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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고려청자에 매달린 삶을 나라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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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고려청자 재현에 매달려 왔습니다. 나라에서 저의 노력을 인정하고 상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쁘고 명예스럽습니다. 지금까지의 고생에 대해 결실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도자기공예 분야에서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된 김복한(67) 명장의 소감이다. 그는 1983년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에 한청도예를 설립하고 고려청자 연구라는 한길을 걸어왔다. 한청도예에 들어서면 아담한 한옥 여러 채가 전통미를 물씬 풍긴다. 마당 한쪽에는 도자기를 굽는 전통 가마가 있고, 이곳에서 생산한 작품을 감상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전시실도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김복한 명장이 그동안 만든 여러 종류의 고려청자가 방문객을 맞았다. 벽면 한쪽에는 김복한 명장이 그동안 받은 각종 상장이 가득 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 ‘특허증’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김 명장은 무늬가 비춰 보이는 제조법, 화산재를 이용한 청자유약의 제조방법 등 8개 항목에 대한 특허 등록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청자 재현에 대한 그의 집념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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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장은 국가나 지자체를 방문하는 귀빈들에게 줄 선물을 많이 제작, 납품하였으며, 독창적 디자인을 가미한 트로피, 상패, 연적 등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흑상감 기법의 청자와 상감이 없는 순청자 유골함을 제작하여 일본 등에 수출하고 있다.

김복한 명장은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되기 오래전부터 고려청자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특히 고난도 기술로 도자기 모양을 완성하는 성형 부문에서 탁월한 기능을 인정받아 2003년도에 ‘이천도자기 명장’, 2004년도에는 ‘경기도 으뜸이’로 선정되었다. 또한 2002년 한국예술전 종합대상을 비롯해 각종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여 예술가로서 명성도 떨쳤다. 도예활동을 하면서 국내와 일본에서 7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수많은 초대전과 단체전에 참가해 우리 전통 자기의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김 명장은 일반인들을 상대로 도자기 제작과정을 공개하고 체험실습도 진행한다. 그는 “한청도요에는 관광객이 하루에 1백명 정도 찾아오고 많을 때는 3백명도 다녀간다”며 “오늘 오전에도 일본에서 온 학생 3백명이 도자기 제작 체험을 하고 갔다”고 말했다.

경남 마산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김복한 명장은 “먹고살기 위해 도자기 만드는 일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8세에 부모를 잃고 1961년 16세 때 도예가인 큰형(김응한)으로부터 6년간 도자기 공예 기술을 배웠다. 이후 고려청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김 명장은 청자를 재현하겠다는 일념을 인생목표로 삼고, 고향을 떠났다.

인천에 있는 변산 위군섭 선생이 세운 한국청자연구소에 들어가 위 선생의 문하생으로 2년간 지냈다. 이후 1970년 이천에 있는 해강 고려청자연구소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해강 유근형 선생으로부터 13년간 고려청자 기술을 전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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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강은 고려시대 이후 5백여 년간 단절되어 잊혀졌던 청자 제작기술을 복원하여 고려청자를 재현한 인물로, 1993년 1백세로 작고할 때까지 고려청자 전통을 계승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도예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이천에서 활동하는 많은 도예인이 그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김복한 명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이 남긴 말씀을 새롭게 깨닫게 되더군요. 해강 선생이 ‘도자기는 선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스승으로부터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고 보니까 제자는 결국 스승의 철학과 인품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자기를 빚는 첫 단계는 좋은 흙을 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김 명장은 “청자를 만드는 흙에는 철분이 약간 섞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백자를 만드는 흙하고는 질이 다르다”고 말했다. 흙을 잘 반죽하여 공기와 불순물을 제거하고 부드럽게 한 다음 물레에 흙을 붙여 도자기의 틀을 만드는 성형 작업을 한다.

이후 반건조 상태에서 상감, 투각, 음각, 양각 등의 기법으로 도자기 표면을 장식하고, 조각이 끝나면 섭씨 8백50도 정도의 불 속에서 초벌구이를 한다. 초벌구이가 끝나고 나서 유약을 바르고 1천2백도 정도의 고온에서 구워 내면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고려청자는 ‘상감기법’과 ‘비색(翡色)’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상감기법이란 표면에 무늬를 파서 그 속에 금속이나 보석 등을 넣어 채우는 기법을 말한다. 상감기법을 청자에 적용한 것이 바로 고려청자가 가진 독창성이다. 고려청자는 정교한 상감기법과 오묘하고 아름다운 비색을 통해 예술의 경지에 올랐고, 세계 도자기 역사에 빛나는 한 획을 그었다.

고려청자는 형태가 아름답고 뛰어난 균형미와 조형미를 나타내며 모양과 용도가 매우 다양하다. 고려인들은 찻잔과 술병을 비롯하여 제기나 등잔, 베개, 향로, 벼루, 연적 등 일상의 생활용품 대부분을 청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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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한 명장은 “하지만 전통 도자기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거의 없어 고려자기의 명맥이 끊어지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1960~70년대 수십 명에 달하던 청자 기술자들이 지금은 5명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제가 침체되면 도자기 산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야 도자기를 찾는 사람도 늘어납니다. 예전에는 일본이 우리 도자기의 가장 큰 수요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도 우리 도자기의 가치를 알아주는 구세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경제도 어렵기 때문에 구매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일본의 잦은 지진도 도자기 구매를 꺼리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김 명장은 “그나마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 명장의 아들 김현욱(45)씨는 경희대 도예과를 졸업한 후 아버지로부터 고려청자 제작기술을 전수받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 명장은 “도자기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통 기술을 계승하는 것과 함께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이상흔 기자 / 사진·장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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