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가을의 끝자락을 알린다. 미완성을 위한 변주곡처럼 조금은 휘청거리면서 나뭇잎의 말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리고 붉은 손바닥을 펼친 것처럼 조용히 가을 햇살을 받아내는 낙엽을 바라본다. 지나다가 슬쩍 손을 건네는 바람에게 자신의 몸을 흔들어주는 낙엽. 성숙해진다는 건 꼭 완성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자신과 주변을 경청할 줄 아는 마음일 것이다.
낙엽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성을 슬며시 꺼내게 하는 힘이 있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아가면서 문득 놓쳤던 것들을 다시 살려내는 매력. 조금은 느리게 걸으면서 마음을 열어본다. 낙엽 여행은 시간을 들여 계획성 있게 하는 것도 좋지만 준비 없이 떠나 보는 것도 즐겁다. 여행을 나서기 위해 준비한다면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훌쩍 떠나도 드라이브와 산책을 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파주의 보광사 일대다.


천년 고찰 보광사는 울긋불긋한 낙엽이 뒹구는 됫박고개(혜음령) 너머 오른편에 있다. 고령산 서쪽 능선, 우거진 숲 속에 숨은 듯 안겨 있어 큰길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아늑하고 조용하다. 포클레인삽 모양의 특이한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대면 절까지 걸어서 10분 거리. 가을이라면 알아주는 단풍명소인 덕에 낙엽 또한 운치 있는 풍광을 자랑한다. 보광사 일주문이 서 있는 곳에 아름드리 활엽수가 많아 낙엽이 제법 두껍게 쌓인다. 여기서 시작되는 길은 낙엽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으며 보광사 경내까지 안내한다.
보광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가 영조6년(1730)에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한강이북 지역의 6대 사찰 중 하나로 꼽혔다는 창건 당시에 비해 그 규모는 많이 작아졌지만 대웅전과 만세루, 원통전, 어실각, 후원 등이 오밀조밀하게 자리해 언뜻 보아도 꽤 운치 있다. 특히 조선 말에 국운이 기우는 것을 염려해 지었다는 만세루에서 내려다보는 보광사의 단풍숲은 지극히 멋스러워 시심이 절로 일어난다.
보광사까지 갔다면 천천히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빛바랜 단청을 입고 있는 대웅보전이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낙엽의 운치에 견줄 만한 멋이 느껴진다. 대웅전 외벽 벽화에 그려져 있는 코끼리는 시간이 덧칠해져 오랜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또한 대웅보전 안에 있는 ‘영산회상 후불탱화’와 16나한상이 있는 응진전,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신 어실각 등도 보광사의 가을운치를 더하는 전각이다. 어실각 앞에 있어 영조가 심었다는 향나무도 독특한 느낌을 주는 볼거리로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보광사 내에는 도솔천이랑 전통 찻집이 있어 잠시 쉬었다 가기에도 좋다. 찻집에서 계곡을 바라보며 차를 한잔 마시는 것도 가을 운치를 더하는 방법이다. 또 영묘암으로 가는 길 왼쪽에 있는 약수는 물맛이 아주 좋다.
파주 일대는 늦가을의 추억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곳이 많다. 원당 종마목장 입구 아스팔트로 포장된 산책로는 경사가 완만해서 유모차를 끌고 가기에도 무난하다. 산책로 끝자락에 있는 벤치는 말들이 노니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미리 준비해온 김밥과 음료 등을 먹는 장소이다. 원당 종마목장과 서삼릉보다 더 많이 알려진 곳이 이곳들을 들르기 위해 지나야 하는 진입로이다. TV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그 후 CF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울창한 포플러 가로수길이다. 웨딩사진을 찍는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인근에 있는 예비 운전자들이 반드시 들르는 연수코스 중 하나이다.
가을 햇빛이 대지를 가득 감싸고 있는 드넓은 초지 위에서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무리 지어 초원을 내달린다. 서울 근교에도 이런 이국적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구파발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원당 종마목장이 바로 그곳이다. 어릴 적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을 읽고 주인공 양치기와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그리워했다면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가을나들이를 나서는 것이 어떨까?
특히 목장 입구에서 3백미터 정도 고갯길에 늘어선 은사시나무길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코스. 높다란 은사시나무가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은 키 높은 가을 하늘과 완벽한 조화를 선보인다. 이 길은 자동차를 타고 휙 하니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쉽다. 차는 농협대학에 세우고 은사시나무길까지 1킬로미터 정도의 가을 길을 걸어가는 것이 정체도 피하고 낭만적인 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목장에 들어서면 4킬로미터의 산책로를 따라 은행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광활한 11만평의 초원이 고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다. 특히 관리사무소 왼쪽으로 난 오솔길은 종마장 최고의 전망 포인트. 초원 위에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는 소나무 사이로 말들이 거니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말들이 뛰노는 초지는 총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하나의 구역은 3천평 정도. 다섯 마리의 종마들이 구역을 하나씩 단독으로 차지하고, 나머지에 한두 살배기 육성마들이 연령과 성별로 나뉘어 사육되고 있다. 목장을 천천히 돌아보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정문에서 무료로 돗자리를 대여해주기 때문에 푸른 잔디 위에서 낭만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매점이나 편의 시설이 없기 때문에 음식이나 음료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관리사무소 앞에 벤치와 조그마한 쉼터가 있다.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 입장은 무료. 매주 화요일과 국경일은 휴무이다.
종마목장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이곳엔 희릉, 효릉, 예릉 세 개의 능이 모여 있어 서삼릉이라 부른다. 인종의 친모 장경왕후를 모신 능이 희릉, 25대 철종과 비 철인왕후 김씨를 모신 능이 예릉이다. 12대 인종과 그의 비 인성왕후 박씨를 모신 효릉은 아쉽게도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밖에 이곳에는 의령원과 효창원, 소경원, 태실 등의 유적지가 있다. 주말에 종마장을 찾는 사람들은 줄잡아 2천명 정도. 좀더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종마장을 둘러보고 서삼릉에서 쉬는 것이 좋다.
또한 공원 같은 농협대학 캠퍼스도 목장 주변의 휴식처. 국내 대학 캠퍼스에서는 보기 드물게 운동장이 잔디로 되어 있다. 또한 정문에서부터 시원하게 뚫려 있는 도로 옆에는 키 높은 은행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어 마치 깨끗하게 정돈된 정원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아름드리 나무 밑에서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어도 좋고 간단한 장비를 준비해 운동을 즐기기에도 손색없다. 24시간 캠퍼스를 개방하기 때문에 밤에는 데이트를 즐기러 오는 연인들도 많다.


주말에 종마장에 들른다면 이곳에 주차하는 것이 좋다. 종마장까지 1킬로미터 정도여서 부담 없고 은사시나무길을 걸을 수 있어 오히려 행복하다.
허브와 함께 차도 맛본다 ‘허브랜드’는 연인들에게 안성맞춤 데이트 코스. 허브농장에 들어서면 그윽한 허브 향에 코끝까지 향기롭다. 경기도 최대 규모의 허브 농장으로 국내에 수입된 모든 종류의 허브를 도소매로 판매할 뿐 아니라 다양한 허브관련 제품들도 구비하고 있다. 농장 옆에는 카페 시설을 별도로 마련해 손님들에게 무료로 허브차를 제공한다. 아로마 테라피가 심신을 치료하는 데 효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평일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긴장을 풀고 싶을 때는 라벤더가 좋고, 두통에는 민트 향기가 효과적이다.
글과 사진·유철상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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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