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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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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다시 만난 남강은 밤의 정취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지난밤 보았던 촉석루의 야경은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남강의 아침은 전혀 새롭게 다가왔고 촉석루 또한 화려하고 교태 있는 밤의 풍경과 달리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남강의 절벽을 휘감고 있는 진주성은 강건해 보였다.

총 길이 1천7백60미터의 진주성곽은 고려 고종 28년(1241년) 창건된 이래 외적과 수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오히려 단단해졌고 수많은 전설을 남겼다. 전사(戰史)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3천8백여명의 군사로 2만명이 넘는 왜군의 침략을 막아낸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이다. 하지만 이듬해 6월에는 10만명의 왜군이 다시 이곳을 침략, 치열한 전투 끝에 7만명의 민·관군이 모두 최후를 맞은 비운의 성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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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 중 하나인 ‘진주남강유등축제’는 바로 임진왜란 전투에서 김시민 장군이 군사 신호로 풍등을 날리며 남강에 등불을 띄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매년 10월이면 남강과 진주 시내 일대를 찬란하게 밝히는 유등축제에 3백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다. 올해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오는 10월 1일부터 보름 동안 열린다.

성벽 위에 우뚝 솟은 촉석루는 꼿꼿한 선비의 기상을 닮았다. 배롱나무 붉은 꽃이 어룽대고 주렁주렁 열매 달린 모과나무 가득한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남 제일의 명승지인 이곳은 전쟁 때 장군들의 지휘소로 사용됐고 평상시에는 선비들이 아름다운 남강의 풍경을 즐기며 시를 읊던 풍류의 성지였다.

촉석루에 오르면 성 아래로 흐르는 남강의 수려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임에도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촉석루’라는 이름은 강가에 돌들이 쭝긋쭝긋 솟아 있는데서 유래했다는데 그 바위 중 하나가 바로 ‘의암’이다. 이곳에 그 유명한 ‘논개’의 전설이 얽혀 있다. 왜군이 침략했을 때 적장의 몸을 껴앉고 남강에 몸을 던진 의롭고도 슬픈 기생 논개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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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이야기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안다지만 의암과 그 아래 남강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노라면 그의 이야기는 소름이 돋을 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종교보다 깊은 거룩한 분노로, 사랑보다 강한 정열로 죽음에 입맞춤했던’ 논개는 변영로의 시 <논개> 속에서, 만해 한용운과 고은 시인의 시 속에서 지금도 숨을 쉰다.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은 멋과 예술을 아는 기생들을 만나 화려한 교방문화를 만들어 냈다. 아, 여기서 한 가지. 옛 기생을 그저 ‘노는 여자’쯤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좀 곤란할 것 같다. 일제 강점기 때 발간된 <조선시보>에서 일본인 기자가 바라본 기생은 ‘북평양 남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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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기생인 계월향과 진주 기생 논개를 지목한 것이었는데,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자 천민이었던 그들을 통해 절개와 풍류를 본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고 예술가였다. 비록 교방문화가 강점기에 밀려 들어온 유곽의 창기들로 인해 본질이 쇠퇴하고 결국 사라졌지만 진주에서만큼은 천년을 이어 내려온 교방문화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진주 교방문화는 교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교방(敎坊)은 고려·조선 시대 기녀(妓女)들을 중심으로 하여 노래와 춤을 관장하던 기관이다. 기녀들의 교방춤과 노래는 사라졌지만 일부 예술인들이 그 춤을 전승 발전시켜 왔다.

또 교방음식문화도 전해져 내려온다. 진주 교방음식은 교방청의 기생들과 함께 가무와 술이 곁들여지는 각종 연회음식으로 조선 중기 음식문화의 꽃을 피웠다. 눈과 입으로 즐기는 교방 상차림은 제철에 나는 신선한 향토 음식과 궁중 음식으로 차려진다. 생선회와 구이, 찜, 그리고 산나물 구절판과 신선로, 죽순잡채 등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음식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예술작품에 비유되곤 한다.

진주성에서의 시간여행은 자연스레 인사동 골동품 거리로 연결된다. 서울 종로의 인사동과 같은 이름의 이 거리는 시끌벅적한 상업성이 난무하는 서울의 그곳과는 달리 묵직하고 고요하다. 10년 전부터 상점이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이곳은 현재 5백미터의 거리에 스무 곳이 넘는 골동품 가게와 갤러리, 고가구점이 늘어서 있다. 이 길가에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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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늘어선 크고 작은 석상과 석부조, 입술을 삐죽이며 금방 울어버릴 듯 재미난 표정의 돌 인형과 옹기, 여기에 재봉틀과 기왓장, 문틀, 맷돌에 무쇠솥까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것들로 가득하다. 가야 토기에서부터, 고려·조선의 도자기와 고서적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이리저리 길가에 늘어선 것들을 쓰다듬어 보고 툭툭 건드려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이 없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로 채워진 거리라서 그런지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는 듯했다.

진주성 강 건너편의 대나무 숲을 산책하고는 정촌면의 강주연못으로 갔다. 진주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강주라고 불렸다.

강주연못이 군사적 중심지인 강주진영의 터였다. 고려 우왕 때(1379년) 배극렴 장군이 이곳 강주연못 터에 자리를 잡고 진주성을 축조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연잎 가득한 생태 연못으로 변신했다.

나무로 지어진 산책로를 따라 연못을 둘러봤다. 연잎 위로 뛰어오르는 개구리들이 보이고 솜털 보송한 논병아리들이 어미를 따라 수영을 하는 귀여운 광경도 눈에 들어온다. 둘레 6백미터의 호수 주변에는 수령 6백년의 이팝나무 고목 네 그루가 작은 쉼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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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남강으로 돌아왔다. 진주시를 관통하는 남강은 경상남도 남부를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다. 함양군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남계천이 소백산지를 거쳐 진양호로 흘러들고 진양호에서 다시 남강댐을 거친 뒤 남강으로 불리다가 창녕군에 이르러 낙동강에 합류하는 물길이다. 남강을 따라 나 있는 2번 국도를 타면 진양호에 닿을 수 있다.

진양호는 수변 지역이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 멸종 위기 야생 동물인 수달의 집단 서식지로 잘 보호되고 있다. 구불구불한 국도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다 보면 진양호 전망대에 도착한다. 거대한 호수를 한눈에 보기에 이곳만큼 좋은 곳이 없다. 이 거대한 호수는 마치 바다와도 같다. 높낮이를 달리한 작은 섬들과 큰 산들은 가깝거나 멀거나 그 원근을 달리하며 눈을 매료시킨다. 물에 비친 섬그림자는 마치 섬이 물에 뛰어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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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태양의 기운이 사그라질 즈음 호수는 꽃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석양의 황홀한 ‘쇼’가 호수위에 펼쳐진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감흥에 젖는다. 그 멋진 풍경은 태양이 산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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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섬, 그리고 호수를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였던 태양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아직 붉고 푸른 기운이 가시지 않은 서쪽 하늘 어귀에서 불쑥 달이 기어 올라왔다. 달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여자의 눈썹처럼 생겼는데, 사방이 어두워지자 그것은 호수 위에 금빛 부스러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호수에 바람이 스칠 때마다 반짝반짝 더 없이 예쁘게 빛을 냈다. 다시 밤이 찾아왔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가을이 시작되는 걸 새삼 깨달았다.

글·고선영 (여행작가) / 사진·김형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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