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324번지 동부소방서 내 대인 119안전센터. 가지런히 정돈된 소방장비와 반짝반짝 잘 닦인 소방차 등 여느 소방서와 다름없는 풍경이지만, 사무공간 한쪽 책장을 열자 1백여 권의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방관련 자격증 수험서에서부터 최근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 외국 유명소설가의 인기소설, 취미서적, 육아서적까지 다양한 책이 구비된 이 책장은 규모는 작지만 어엿한 이동도서관이다.
첫 시행에 들어간 지난 2010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119안전센터 근무자(58명)와 동부소방서 근무자(119구조대 포함 55명) 등 총 1백3명이 이곳을 통해 빌려 본 책은 약 3천 권. 소방서에서 기록한 도서대여대장에 따르면, 개관 이후 지금까지 한 사람이 한 달 평균 2권, 다독자(多讀者)는 7~8권까지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부소방서에서 소방교육 및 대외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강혜원(43·여·소방위) 주임은 “인근 시립도서관에서 매월 새로운 도서 1백여 권씩을 대출해 대원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인기가 많은 서적은 재대출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3교대(24시간 근무 뒤 48시간 휴식)로 근무하는 이곳 소방관들은 근무하는 날 출동대기 시간이나 쉬는 날을 이용해 책을 읽는다.
최근 육아서적을 섭렵하고 있다는 김경철(41) 소방교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가 있는데, 정말 잘 키우고 싶고 딸아이가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육아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육아를 공부하면 할수록 후배 소방관들을 대할 때에도 좀 더 부드럽게 대하게 되더라”고 털어놓았다.
소방관의 직위체계는 경찰과 비슷하다. 순경에 해당하는 말단 ‘소방사’에서부터 ‘소방교-소방장-소방위-소방경-소방령-소방정’ 순으로 올라간다. 소방서장의 공식직위은 소방정이지만, 보통 서장으로 불린다. 또 직위명 대신 ‘주임’, ‘과장’ 식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위험한 환경에서 함께 근무하는 이들은 직위를 뛰어넘어 강한 동료애로 뭉쳐져 있지만, 작은 실수가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자칫 서로에게 거칠게 대하기 쉽다고 한다. 또 참사 현장을 자주 목격하다 보니 식사를 하지 못하거나 악몽에 시달리는 이른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는 소방관도 많다.
소방관의 평균수명은 58.8세로 우리나라 공직자 중 가장 짧다.
참고로 소방관 정년은 57세다. 근무 중 사고로 인해 순직하는 경우가 통계에 반영되기도 했지만, PTSD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기 때문이라는 게 소방관계자들의 말이다.

강혜원 주임은 “이곳 동부소방서에서 1·1·1운동을 펼치게 된 것도 독서를 통해 웃음을 잃은 소방관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고, PTSD 극복을 돕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소방관들은 독서의 도움이 크다는 반응이다. 최장기(32) 소방교는 “책을 자주 읽으니 화제가 많아지고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됐다.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서로 추천하기도 하고, 읽은 내용 중에 인상깊었거나 감동적인 부분이 있으면 서로 이야기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특정 서적이 직원들 사이에서 유행을 하기도 했다. 강 주임은 “최근에는 소방서 내 여직원들 사이에서 광주 출신 여주인공이 상경해 차도남(차가운 도시남자)과 겪는 사연을 담은 소설이 유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감정이입이 됐기 때문이란다. 남자직원들 사이에서는 유머담을 담은 책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여행기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강 주임은 “소방관들은 언제 출동명령이 내려질지 몰라 점심마저도 바로 옆 식당에서 해결하는 등 소방서 주변에서만 맴돌 수밖에 없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행자의 책을 읽으면 가슴이 후련한 느낌이 든다”고 전했다.
독서 분위기가 공부하는 분위기로도 이어진다고 한다. 올해 소방설비 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나영일, 박판교 소방교는 “몇 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한데, 계속 공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최근 소방서 내 독서 분위기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대학의 야간대학원에 진학해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는 최장기(32) 소방교 역시 “나 말고도 우리 소방서에서 야간대학원에 다니는 소방관이 10명 정도 된다”며 “독서와 공부를 장려하는 소방서 내 분위기에 힘을 얻은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변화는 대여서적 목록에서도 드러났다. 시행 첫해 교양서적과 전문서적(소방관련)의 비율이 8대2이던 것이 올해에는 5대5 정도로 전문서적 비율이 높아졌다.

김남철 센터장(소방경)은 “직장생활과 배움을 병행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계발을 하면서 직무능력도 키우고, 또 정신적 스트레스도 독서로 푸는 직원들이 자랑스럽다”며 “책이 가까이 있으면 아무래도 더 자주 읽게 된다. 또 남이 읽으면 나도 따라 읽게 된다. 앞으로 독서분위기를 계속 독려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부소방서는 책을 통해 인근 지역사회와의 연계도 강화하고 있다. 2010년부터 소방서 내 이동도서관을 인근 시장상인들에게 개방해 현재까지 9백여 권의 도서를 대출했다. 앞으로는 도서 구매 시 동네서점을 이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나강문 소방서장은 “작지만 꾸준한 실천을 통해 지역사회에 또다른 기여를 준비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이동도서관 운영을 늘리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관련 교육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과 사진·남창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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