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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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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자락길 1구간은 경북 영주 소수서원을 출발하여 금성단, 삼괴정, 죽계구곡, 초암사, 달밭골, 비로사를 지나 삼가주차장에 이르는 총 12.6킬로미터의 코스다. 이 코스는 선비길, 구곡길, 달밭길로 나뉜다. 시간이 없어 한 부분만 걸어야 한다면 비밀의 숲처럼 호젓한 ‘달밭길’을 추천한다.

선비길은 소수서원에서 금성단을 거쳐 삼괴정에 이르는 길이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데, 서원이 자리 잡은 주변의 풍광도 명성 못지않게 아름답다. 소수서원 진입로에 조성된 소나무 숲에는 고고한 기품이 흐른다. 청록빛 죽계천과 어우러져 한폭의 수묵화가 떠오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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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과 이웃한 선비촌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복원하여 선비와 상민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민속마을이다. 고택 숙박체험, 선비체험, 만들기체험(나무공예, 짚풀공예, 한지공예, 천연염색공예), 전통음식체험(떡메치기, 두부만들기), 예절체험(다례체험, 전통혼례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선비촌 인근에 청소년수련관, 소수박물관도 있다.

소수박물관, 선비촌을 둘러보고 금성단으로 향해 보자. 길가에 사과밭이 즐비하다. 가을이 탐스러운 사과처럼 붉게 물드는 중이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정축지변의 참화를 당한 금성대군과 금성대군을 따르던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제단이다. 금성단을 지나 고려 후기 향교였던 순흥향교를 찾아간다. 정축지변 때 폐허가 됐던 순흥향교에는 적막감이 감돈다.

순흥향교를 나와 들녘을 따라 걷는다. 순흥저수지를 오른편에 끼고 걷다 보면 배점리의 삼괴정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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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점리 입구 정자 앞에는 6백년 된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어 삼괴정이라 불린다. 느티나무는 마치 성문처럼 늠름하게 배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삼괴정 아래에 ‘배순정려각’이 있다. 퇴계 이황이 생전에 가르친 제자 중에는 대장장이인 배순이라는 인물도 있었다고 한다.

퇴계 선생이 세상을 뜨고 나서 배순은 삼년상의 예를 다했다고 하는데, 이후 마을 이름이 ‘배순의 점방’이 있던 곳이라 하여 배점리가 됐다.

삼괴정을 지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구곡길이 시작된다. 삼괴정 앞의 9곡부터 초암사 앞의 1곡까지 아홉 굽이의 계곡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퇴계 선생이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노랫소리처럼 들린다 하여 굽이마다 9개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퇴계선생이 즐겨 들었다던 옛날의 그 물소리를 감상하기 위해 물가에 귀를 기울인다. 작은 폭포를 이루며 바위를 타고 넘치는 물소리가 ‘쏴쏴’, 한여름 소낙비처럼 우렁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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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계구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곡이 시작되는 지점에 초암사가 있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부석사 터를 보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임시로 거처했던 곳이라 하여 초암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초암사에서부터 삼가리 주차장에 이르는 길이 달밭길이다. 달밭길은 소백산자락길 1구간의 백미다. ‘달밭’은 ‘산에 있는 밭’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달밭길엔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달밭길의 출발점은 초암사다.

초암사를 지나 숲길로 들어선 지 10분 정도 됐을까. 원시림처럼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지 않았던 곳이라 소백산자락길이라고 적힌 리본을 찾지 못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이 숲을 통과하면 그간 개방되지 않았던 계곡길이 드러난다. 벽장에 감춰둔 곶감을 찾아낸 기분이 이럴까. 계곡 굽이마다 맺힌 소(沼)에는 손가락 하나 살짝 담그기도 어려울 정도로 차가운 계곡물이 고인다. 작은 폭포들이 쉴 새 없이 바위를 타고 흘러넘친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 위를 걷는 발걸음이 폭신한 이불 위에 누운 듯 편안하다. 낙엽 밟는 소리, 물소리, 산새소리가 삼박자를 맞춘다.

계곡길과 숲길을 번갈아 가며 걷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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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계곡에는 수령 5백년 넘는 소나무와 기암괴석, 맑은 물이 어우러져 멋진 풍치를 만들어 낸다. 그 아름다운 풍치를 바라보는 금선대 위에 금선정이 오롯이 앉아 있다. 금선대라는 이름은 조선 인조 때 인물로, 풍기 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 금계 황준량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다. 금선정에서 비로봉 쪽으로 오르면 통일신라시대의 천년 고찰 비로사를 만날 수 있다.

소수서원에서 죽계구곡까지는 그늘이 없는 포장도로를 걸어야한다. 햇볕을 가릴 수 있는 복장을 하는 것이 좋다. 달밭길은 험하진 않지만 계곡이나 산길을 걸어야 하니 경등산화를 신는 것이 좋다.

죽령 옛길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소백산자락길의 일부 구간이다. 하루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는 소백산 산행의 출발지를 죽령 옛길로 선택하는 것도 좋다. 희방사역에서 1백미터 정도 올라가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죽령 옛길 걷기 구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름다운 숲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죽령 옛길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은 안내판도 발견할 수 있다.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죽령에 대한 이야기나 삼국시대 때 고구려 온달 장군이 전투를 벌였던 이야기, 주막거리 터 이야기, 신라의 화랑 죽지와 관련된 이야기 등 오랜 역사부터 전설과 설화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따라 읽으며 걷다 보면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여행의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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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사역을 출발할 때는 평탄했던 길이 조금씩 가팔라지기 시작하면 석축만 남아 있는 옛 주막거리 터에 이른다. 과거를 보기 위해 길 떠난 선비나 관원들, 장터를 찾아가는 장돌뱅이들이 고개를 넘기 전에 쉬어 가며 하룻밤 묵은 주막이 있던 자리다. 우리도 여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삼림욕을 하듯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고 울창한 숲에서 사계절 다른 모습을 엿보다 보면 금세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죽령 옛길이다. 생태탐방로 같은 안내판에 숲과 나무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돼 있어 소백산 등산 코스와 연계해 산행을 즐겨도 좋은 길이다. 가족과 함께 걸어도 좋다.

풍기로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풍기온천에서는 긴 산행의 피로를 풀 수도 있다. 풍기온천의 물은 수질이 좋아 목욕을 하고 나면 금세 피부가 미끈거릴 정도다. 오래전부터 계곡물 근처에서 달걀 썩는 냄새를 풍기는 물이 솟아났는데, 주민들이 피부병 등을 치료했다고 한다. 불소가 다량 함유된 알칼리성 온천으로, 국내에서 몇 안되는 유황온천이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에 폭 안긴 자태가 영락없는 물속의 섬이다. 양반도 평민도 모두 함께 공부했다는 조용한 선비의 마을, 무섬마을로 들어서 보자. ‘양반마을’보다는 ‘선비마을’이 더 잘 어울리는 공간, 삼면이 물줄기에 안긴 무섬마을이다.

아예 물 위에 떠 있는 섬은 아니지만 보기에는 물속의 섬 같다.

지명이 한문으로도 똑같다. 물수(水)에 섬도(島)를 써서 수도리,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다. 삼면은 내성천 줄기에 안겨 있고 뒤로는 태백산 끝자락과 이어진다. 태백산에서 내려오는 내성천과 소백산에서 흐르는 서천이 이곳에서 몸을 섞어 ‘물도리동’이라고도 불렸다.

앞산에 올라 무섬마을을 살펴보면 물줄기에 물줄기가 더해지고 산과 물이 태극모양으로 돌아나간다. 마을의 음양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자식이 잘되고 의식이 풍족하다고 해석된다. 또 무섬마을의 물 위에 활짝 핀 연꽃 모양의 땅을 두고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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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을 건너 무섬마을에 들어오면 오래된 시골 마을에 홀로 들어선 것 같다. 매점도 식당도 한 곳뿐이다. 아직 관광지화하지 않아 찾는 이가 많지 않다. 7월 말까지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은 곳이었다. 내성천을 끼고 펼쳐진 드넓은 백사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다 조용한 고택에서 쉬어 가기 괜찮다. 현대적이고 편안한 것 대신 여유있게 한 박자 쉬어 가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공간이다.

고택촌에 왔으니 하룻밤쯤 묵어 봐야 진가를 알 터. 무섬마을에서 진행하는 고택체험으로 하룻밤 보내고 나면 산과 들에 안겨 사는 유유자적한 삶이 그리워진다. 욕심도 싸움도 없는 낙동강 물속, 무섬마을은 그래서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초가을에 찾아가면 금상첨화다.

글과 사진·유철상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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