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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책 읽어주는 남자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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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뻔한 비유이겠지만 역사는 거울이다. 지금 이곳의 몰골을 가장 정직하고 정확하게 비춰준다. 역사의식이라는 말은 그래서 중요하다. 역사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의식할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생성·변화·소멸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고, 어떤 유형의 삶이 종국에 어떻게 결론나는지 깨닫게 한다. 만약 오늘의 삶에 만족하고 기꺼워한다면 역사라는 거울을 꺼내 들 리 없다.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광해군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학계에서도 폭군이라는 전통적인 평가를 뒤집고 실리외교를 추구한 합리적 군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역시 대중은 뒤집어 새롭게 평가하는 것에 환호하는 듯싶다. 오항녕의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은 이런 분위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책이다. ‘광해군에 대한 21세기의 반정’이라 할 만하다. 그간에 이루어진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를 비판하며 인조반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밝혀 낸다. 지은이는 판단이 흐린 임금이라는 뜻의 혼군(昏君)이라는 조선시대의 평가를 손들어 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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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두괄식으로 쓰인 책이라 무엇을 근거로 그 주장을 뒷받침하려 하는지 흥미롭게 읽게 된다. 먼저 지은이는 광해군이 친형인 임해군을 제거한 일을 문제 삼는다. 역모라 하지만 실상을 보면 미미했다. 이미 평판이 좋지 않아 세자의 자리에도 오르지 못한 인물이다. 그런데 새로운 시대를 여는 초입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도록 방치하고 국정이 무려 넉 달이나 공백상태에 놓이게 했다.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될 법한 일은 대동법 시행과 관련이 있다.

조선의 세금징수 방식 가운데 특산물을 내는 공납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공납제에 문제가 일어났다. 내야할 양은 더 늘어난 상태인 데다 해당 지방에서 더는 생산되지 않는 공물도 있었다.

일례로 옛날에는 서해안에서 잡히던 조기가 이제 잡히지 않게 되었는데도 나라에서는 여전히 조기를 바치라고 했다. 이래서 생긴 것이 방납이다. 일정한 대가를 받고 생산되지 않는 공물을 대 주는 업종이다. 특히 광해군 때는 왜란 이후다. 백성의 삶이 이래저래 어려운 때인지라 공물제도를 혁파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제기한 것이 바로 대동법이었다.

광해군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대동법을 시행하되, 경기도에 한정해 시범사업을 펴기로 하고 주관기관으로 선혜청을 설치했다. 일반적으로는 광해군은 대동법을 전국에 걸쳐 확대 시행하고자 했으나 기득권층의 반발로 좌절했다 한다.

지은이는 이런 평가에 정면으로 맞선다. 방납으로 이득을 보는 기득권 세력이 바로 광해군의 지지기반이었고, 왕 자신이 대동법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지은이가 광해군의 최대 실정으로 꼽는 것은 무리한 토목공사다. “민가 수천 채를 철거하고 두 채의 궁궐을 건축하는 등 토목공사를 10년 동안 그치지 않아서 그 폐혜가 실로 컸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더불어 실리외교에 대한 평가도 가혹하다. 강홍립을 대장으로 내세워 치른 심하전투의 실패는 절대 실리주의의 결과가 아니란다.

1만3천명의 병사 가운데 9천명이 전사했는데, 이를 어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느냐는 항변이다. 여기에 덧붙여 지은이는 숱한 옥사와 궁궐공사로 인재와 국력을 소진한 상태라 광해군이 북방상황을 제어할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학계에 자리 잡은 평가에 딴죽을 걸며 새로운 주장을 펼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자못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너무 그런 점에만 초점을 맞추면 놓치고 마는 것이 있다.

오늘 우리가 광해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달리 말하면 광해군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가 이를 잘 수용하고 있는가를 성찰하는 바가 더 중요하다. 이때 비로소 역사가 거울이 될 터이다.

글·이권우 (도서평론가·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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