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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독자적인 재배기술 개발… 성공의 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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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농업은 공부 많이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경북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에 위치한 국내 최대 노루궁뎅이 버섯농장 ‘23살 농부’ 전병목(53) 대표는 성공귀농의 요인으로 ‘공부’를 꼽았다. 귀농 10여년 만에 연매출 5억원대로 부농(富農)의 꿈을 이룬 전씨가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공부의 힘이었다.

성주 출신인 전씨는 41세이던 지난 2000년,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서 운영하던 전업사와 부동산중개업을 정리하고 지금의 버섯농장 자리에서 참외농사를 시작했다. “남 눈치 안 보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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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경험은 주말에 텃밭 가꿔 본 것이 전부였지만 ‘성주니까 참외를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다. 그러나 참외농사는 만만치 않았다. 기존 참외 농가와 경쟁도 있었다.

전씨는 다른 아이템 찾기에 나서 ‘느타리 버섯이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여기저기서 자문을 구해 2004년 컨테이너 2채를 살림집으로 삼고 비닐하우스 2동을 세워 느타리 버섯 균상재배에 들어갔다.

버섯재배 농가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으로 큰아들 영균(29)씨와 함께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며 노력을 기울인 끝에 느타리와 표고버섯 생산에 성공했다. 문제는 판로였다. 공들여 기른 버섯을 중개상인에게 넘기고 나면 손에는 겨우 생활비 정도만 남았다. 가족농이었기에 망정이지 일손을 썼다면 버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전씨는 ‘직거래밖에 답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경영과 마케팅을 배워야 했다. 2007년 경북농업기술원에서 운영하는 벤처농업대학에 입학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2009년에는 경북농민사관학교에 입학해 품목마이스터 버섯과정(경북대)을 수료하고, 이듬해 심화과정인 농업 MBA과정(경운대)을 마쳤다. 또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등 농업선진국 영농현장도 견학했다.

공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전씨는 배운 것을 실제로 농사에 적용해 보며 자신만의 지식을 쌓았다. 2004년 참외에서 버섯으로 재배품목을 바꾼 뒤에도 전씨는 계속 ‘남들 안 하는 작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2006년 한 버섯재배 농가에서 노루궁뎅이 버섯을 소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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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비닐하우스 한곳을 실험실로 삼아 그동안 배운 지식을 토대로 ‘겁도 없이’ 독자적으로 재배기법을 연구했다. 실패하더라도 자기만의 노하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2년여 연구끝에 버섯이 뿌리를 내리는 배지를 개선해 버섯의 면역력을 높이는 재배기법을 개발했다.

균주 생존율이 기존 농법 대비 1백50퍼센트 이상 향상되면서 생산량이 늘고 품질이 좋아진 데 자신감을 얻은 전씨는 2009년 그동안 배운 경영과 마케팅 기법을 결합해 노루궁뎅이 버섯만 전문적으로 생산·판매하는 영농브랜드 ‘23살 농부’를 설립했다. 전씨와 함께 버섯을 재배하는 큰아들의 ‘농부 입문’ 나이가 23세였던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23살 농부’가 설립되자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작은아들 어진(26)씨가 온라인 마케팅 담당으로 합류했다. 통신관련 대기업에서 일하던 어진씨는 “지루한 회사일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했다”며 “아이템은 괜찮다고 판단했다.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팔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작은아들의 가세로 전씨의 온라인 마케팅은 전기를 맞게 됐다.

이전까지 제품 설명만 겨우 올리던 수준이었다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생생한 제품사진과 상세한 설명, 친절한 응대가 더해지게 됐다. 노루궁뎅이 버섯을 취급하는 곳이 전씨 농장만은 아니었지만, 성실하게 운영되는 홈페이지와 소비자 불만사항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본 소비자들이 전씨네 제품을 클릭한 것이다.

운도 따라 줬다. 노루궁뎅이 버섯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TV 등 언론에서 전씨의 농장을 취재했다. 방송을 몇 번 타고 나니 농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고 하루 20~30건씩 전화문의가 이어졌다.

2008년까지 5천만원을 오르내리던 매출은 2년 만에 10배 이상으로 뛰었다. 판매물량 전부가 전화와 온라인으로만 팔려 나갔다.

2곳에 그쳤던 비닐하우스가 현재 16곳으로 늘었고, 재배면적도 4천5백16제곱미터에 이른다. 한해 생산량도 1백5톤으로 국내 최대다.

사실 전씨의 두 아들이 처음부터 농사를 자기 일처럼 도운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전씨의 아내 이순덕(53)씨의 아이디어가 컸다.

“제가 남편에게 제안했죠.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주지 말고 성과급제로 하자. 그래야 더 열심히 하지 않겠나.”

처음 전씨는 “무슨 소리냐”며 일축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들에게 “버는 만큼 가져가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큰아들 영균씨는 버섯재배와 관련해 이런저런 개선안을 내놓고, 작은아들 어진씨는 사진편집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우고 성공한 쇼핑몰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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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업도 더 정교해졌다. 이전까지 아버지가 시키는 일만 하던 아들들은 자기 분야에서 철저한 책임감을 보이게 된 것이다. 두 아들이 많은 부분을 전담하면서 전씨 부부도 각각 경영과 가공을 맡아 높은 효율을 보인다. 아내 이씨도 하루 50바구니에 달하는 버섯을 여성 특유의 세심함으로 가공하고 있다.

전씨는 귀농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직거래 소비자들은 화려한 제품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상품을 찾는 것 같다”며 “마케팅에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농부는 어디까지나 상인이 아닌 농부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과 사진·남창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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