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올림픽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끈 한국인 손기정이 있었다.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서 부상으로 받은 월계관으로 자신의 가슴에 박혀 있는 일장기를 가리며 고개를 떨군 한국의 젊은 청년. 그는 나라 잃은 민족으로서 가슴속 깊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당시 세계 언론은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리스트가 왜 이렇게 슬픈 표정을 짓는지 의아해했다.
마라톤 결승지점인 메인 스타디움에 들어오는 손 선수를 본 독일 아나운서는 “한국의 학생, 손기정”이라고 그를 불렀다. 어떻게 독일의 아나운서가 손 선수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그가 베를린 현지에서 ‘손기정=한국인’이라고 인식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상상해보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세계적인 육상영웅이 된 그에게, 베를린 현지인들과 독일 군인들, 많은 외국인들은 사인을 요청했다. 그때마다 그는 언제나 “No Japan, Korean 손기정”이라고 말하며 당당히 한글로 손기정이라고 사인을 했다. 그 옆에 Korea, 또는 한반도 지도를 그려주며 자신의 조국을 알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이에 일본은 3·1운동과 같은 민족항일운동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였고, 동아일보·조선중앙일보 등의 일장기 말소사건 등 국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손기정 선수의 환영축하행사는 일절 금지했다. 손기정은 일본 고등경찰의 감시대상이 되어 일거수일투족이 일본 경찰에 보고됐다. 이후 그는 “다시는 일장기를 달고 뛰지 않겠다”며 24세의 젊은 나이에 마라톤에서 은퇴했다.
1945년 광복 이후부터는 후진양성에 힘쓰며 대한민국의 스포츠발전을 위해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1988년 올림픽 성화주자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환하게 웃으며 서울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 들어오던 그의 미소를 세계인은 뭉클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는 손기정 선수에 대한 기억이, 그가 그토록 찾고 싶어했던 고국에서 점점 퇴색되고 있다.
손기정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초등학교 3학년 역사 교과서에 실린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아직 손기정 선수에 대한 교과 과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여전히 많은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손기정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 위안부 할머니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청산이나 진심 어린 사과 없이 수시로 그들의 침략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의 영웅에 대한 역사적인 교육과 그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현실이다. 더욱 가슴 아픈 건 스스로 우리들의 영웅을 기억에서 지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손기정기념재단은 2012년 10월 14일 손기정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손기정 기념관을 개관하게 됐다. 그의 도전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과 굽히지 않았던 나라 사랑 의지와 민족 평화에의 참뜻을 한국에,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 손기정기념관에서는 나라 없는 민족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우리 어린 세대, 젊음 세대들에게 다시 한번 되새겨주고 싶다.
아울러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쉽고 재미있게 민족의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어린이, 청소년, 외국인 등 모든 계층이 손기정 선수의 나라 사랑 정신을 배우고, 자신만의 42.195킬로미터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이준승 (손기정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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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