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신부와 수녀가 키스를 나누는 장면, 흑인과 백인이 나란히 전라로 서 있는 뒷모습. 1980년대 전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베네통의 광고사진 연작이다. 그 과정에서 인종간 평등, 종교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조명됐다. 아마 그쯤부터였을 것이다, 상업사진의 새로운 기능이 대중적 관심을 얻은 것은. 어떤 상업사진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메시지를 판다.
서울 한남동 류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작가 김용호의 사진전 <우아한 인생>은 한국 상업사진의 현주소를 일별하게 해 주는 전시회다. 김용호의 필모그래피는 한 줄로 요약하기 힘들다. 김용호는 패션사진가로 출발해 상업광고 분야에서 대표적인 사진가로 활동해 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작가’로서의 행보도 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걸린 20여 점의 사진작품엔 그의 이런 ‘하이브리드’한 이력이 묻어 있다. 모 신용카드 회사를 광고하기 위해 찍은 사진은 얼핏 보기엔 광고가 아닌 도시의 화려한 삶의 어느 한순간을 세심하게 재현해 낸 화보같이 보인다. 신용카드는 그 자체로 메시지의 일부를 구성하는 오브제의 하나일 뿐이다.
김용호는 이번 전시회의 의미를 “상업광고에 쓰인 사진이 소장가치 있는 예술작품으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전시라는 말이다.


<우아한 인생>의 사진촬영을 준비하며 김용호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라돌체비타(달콤한 인생)>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한다. 어쩐지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 허상 등 영화의 느낌이 김용호의 사진에 묻어 있다.
화려한 의상에 보석을 달고 완벽하게 메이크업을 한 인물들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질펀한 저녁식사를 즐기는 장면은, 그러나 왠지 고독해 보인다. 화려하지만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어딘지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닮아 있다.
그러므로 김용호의 사진은 역설이다. 그의 사진에는 소비 중독과 반성의 굴레에서 제자리걸음하는 현대 도시인의 자화상이 투영돼 있다. 전시회를 보고 난 후 괜스레 입안이 마르며 씁쓸해지는 것도 그 때문일 터다. 물신주의를 조장해야 하는 신용카드를 광고하기 위해 제작된 광고사진의 뒷맛 치고는 꽤 쓰다. 그래서일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것이 김용호 작가가 노린 최종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글·하주희 기자
전시 10월 14일까지. 11~20시(월~토), 11~18시(일) 입장료 없음
문의 www.ryuhwarang.com, ☎02-6326-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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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