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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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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떡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명물기략>에는 중국의 떡인 알병의 알 자가, 빈대를 뜻하는 갈(蝎) 자로 잘못 알려져 빈대떡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옛날에는 지금의 정동지역에 빈대가 많아 빈대골이라 했는데, 그곳 사람들 중에 부침개 장수가 많아 빈대떡이 되었다는 풍설도 있다.

그러나 국어학계는 빈대떡이 중국떡 빙져에서 비롯된 호칭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빙져가 빙쟈가 되었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떡이라는 의미의 빈자떡이 되었고, 그것이 빈대떡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가장 즐겨 먹는 평안도 사람들은 정작 빈대떡이라는 명칭을 잘 쓰지 않고 통상 ‘녹두지짐’이라 부른다는 점이다. 안주와 음식의 경계에 있는 빈대떡은 요즘 웬만한 한식집이나 술집들이 다 내놓는 서민의 메뉴이다. 하긴 빈대떡이 옛날에는 기름에 지진 고기나 생선을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높이 괴어 올릴 때 밑받침용으로 쓰이던 것인데, 그것을 행사가 끝난 후 하인들이 나눠 먹다가 아예 독립된 음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남대문 밖에 유랑민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럴 때면 당시의 세도가에서는 빈대떡을 많이 부쳐 소달구지에 싣고 가 “어느 집의 적선이오” 하면서 그들에게 던져 주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구호식품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옛 요리책에 나오는 빈대떡은 빈자의 떡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호사스럽다. 빈대떡이 처음 등장하는 17세기 말의 <음식디미방>은 “녹두를 뉘없이 거피하여 되직하게(조금 되게) 갈아서 번철에 기름을 부어 끓을 때 조금씩 떠서 올린 뒤 거피한 팥에 꿀을 발라서 소로 넣고, 그 위에 녹두 간 것을 또 얹은 후 유자빛이 날 때까지 되게 지져야 한다”고 그 요리법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의 빈대떡과는 달리 달콤한 팥이 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이다. 1809년에 나온 <규합총서>의 설명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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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팥 대신 꿀에 버무린 밤이 소로 들어가며 위에 잣을 얹고 대추를 사면에 박아 화전모양으로 만든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옛날의 빈대떡은 달콤한 맛과 화려한 모습까지 갖춘 디저트에 가까운 음식이었던 셈이다.

요즘처럼 소를 넣지 않는 빈대떡은 1924년에 출간된 <조선무쌍 신식요리제법>에 비로소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해삼, 전복과 각종 버섯이 재료로 들어가는 등 오늘날의 빈대떡과는 거리가 있는 고급 음식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빈대떡은 상류층의 음식이었다가 서서히 서민음식으로 변모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1948년에 가수 한복남이 불러서 히트했던 가요 ‘빈대떡신사’는 그 무렵에는 빈대떡이 완전히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려준다. ‘빈대떡신사’의 가사는 빈털터리 신사가 요릿집에서 술을 마시고 도망가다 붙잡혀서 매를 맞는 상황에 구경꾼들이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고 비웃는 서글픈 장면을 묘사하여 일반의 공감을 얻었다. 같은 부침개지만 논현동의 한성칼국수는 빈대떡으로, 저동의 평래옥은 녹두지짐이라는 명칭으로 이름을 얻고 있다.

글·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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