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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징검다리 연휴… 하루 한 권씩 읽고 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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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른 기준은 이렇다. 읽을 만한 내용이 있으면서도 너무 어렵지 않을 것. 이 간단한 원칙이 실은 혼란의 주범이다. 내용 있다, 너무 어렵지 않다는 평가는 사람에 따라 늘 엇갈리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기준 하나를 더 추가했다. 문체다. 대화하듯 편안히 쓴 책을 골랐다. 이 역시, 내 판단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미리 변명을 해두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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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고전 분야. 철학자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사계절 펴냄)을 꼽겠다. 요즘 들어 인문학 열풍에 동양고전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공자, 맹자, 장자를 들먹이는 책이 하루라도 나오지 않는 날이 없다. 그런데 그 수준이라는 게 대개 “이게 바로 성인들 말씀이야 아아아!” 하는 수준의 감탄사 나열이다. 더 눈꼴 사나운 모양새는 그런 책들 저자 가운데 일부는 성인들 말씀에 도취된 나머지 자기가 마치 성인군자라도 되는양한다는 점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같은 이는 이미 오래전에 “연구자 스스로가 혹시 국학대사가 되려는 게 아닌가”라고 질타해 뒀지만, 어쩌면 동양고전의 마력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 지점에서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은 빛을 발한다.

봉건왕조 시절 얘기를 근대 민주공화국에 고스란히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법. 저자는 성인들 말씀이라는 신비로운 주술을 싹 걷어내 버리고 날것 그대로의 현실정치 사상으로서만 제자백가를 대한다. 아주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던 얘기들을 저자 특유의 필체로 집중력 있게 서술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개인적 경험을 말하자면 이 책을 보고 난 뒤 논어를 다시 봤더니, 공자님의 아름다운 말씀보다는 잔혹했던 당시 중국의 정치 현실이 더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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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분야에서는 서현 한양대 교수의 <배흘림기둥의 고백>(효형출판 펴냄)을 꼽겠다.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한번 나왔다가 제목을 바꿨다. 아무래도 우리 건축의 미학으로 널리 알려진 소재로는 배흘림기둥만 한 것이 없다 보니 그리된 일이겠거니 짐작한다. 우리만의 미학, 우리만의 미감을 내세우는 논의들은 많은데 이런 논의가 불편해질 때가 있다. 그 뿌리에 열등감이 엿보일 때다. 저자는 전통건축물에 이런 의혹의 메스를 들이댄다. 처마의 날아갈 듯이 아름다운 선 운운해 대는 데 저자는 찬물을 확 끼얹는다. 한국 상황에서 대형 건축물을 짓기 위해 쓸 수 있는 재료는 나무뿐이다, 나무는 썩을 위험이 있다, 고로 최대한 나무가 썩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는 방향으로 건축이 이뤄져 왔다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한국적인 미감이 어쩌고 하는 감탄사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그런 미감 따윈 증발시켜 버리고, 건물의 쓸모와 내구성을 고민했던 목수의 땀방울을 복원시켰다. 미감이라는 것도 사실 기술적 한계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예술가란 결국 고도의 장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전쟁을 연구하는 분들이 이런 관점에서 대중적인 전쟁사를 하나 써냈으면 좋겠다. 제발 용기 있는 장수 하나가 군사들을 독려하니 군사들이 용기백배해서 적진을 무너뜨렸다는, 장풍 쏘는 무협지 같은 서술을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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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는 일본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펴냄)을 추천할 만하다. 다른 책도 몇 권 떠오르지만, 독자가 잠자리에 들기 전 머리맡에서 한 장씩 읽어나갈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을 고려했다.

제대로 읽는다는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12세기 교회법 개정을 초래한 ‘중세 해석자 혁명’에 대해 논하는 대목이다.

‘중세=암흑기’라는 등식이 워낙 확고부동한데다 한국적 상황과 거리가 있다 보니, 중세에 대한 대중적인 책을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 부분을 미약하나마 보충해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저자가 자신만의 독서론을 강하게 밀고 나가면서 기독교 원리주의건, 이슬람 원리주의건, 종말론적 철학이건 뭐건 간에 문제는 열렬히 믿어서가 아니라 열렬히 읽지 않아서, 읽더라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제대로 읽기에는 용기가 부족해서라고 역설하는 부분의 문장들은 별처럼 빛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어떤 이념, 어떤 종교의 광신자들이 무섭다기보다 불쌍하고 처량해 보이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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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분야에서는 일본 작가 사토 겐이치의 <소설 프랑스혁명>(한길사 펴냄)을 골랐다.
철학에 이어 또 일본사람의 책을 고른 데에는 개인적 호기심이 작용했다고 해야겠다. 역사학자의 길을 고민했던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일단 역사적 사실관계가 탄탄하다. 아직 완간된 게 아니라서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의 감상 포인트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의 비교가 될 듯하다. <로마인 이야기>는 대중적 역사책 쓰기의 전범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로마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혹평을 면치 못하는 책이기도 하다. 비판의 핵심은 딱 하나다. 일본 군국주의 우익 세력의 논리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지극히 일본적인 서술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오나 나나미가 책의 곳곳에서 ‘일본의 다신교 VS. 로마의 일신교’를 비교하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천황 VS. 교황’이라는 대립구도를 떠올리게 해서다. 그래서 개인적 호기심을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 사토 겐이치도 ‘천황 VS. 교황’이라는 대립구도를 프랑스 혁명에 투영할 것인가, 한다면 어떻게 투영할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모든 역사란 보는 사람의 관점이 투영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한국에서는 4권까지밖에 번역이 안 됐으니, 아직은 그냥 설익은 관심사라고만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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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종교 분야에서는 철학자 김용규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휴머니스트 펴냄)을 고르겠다. 3만원이 넘는 정가에다 8백 쪽이 넘는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다. 책이냐 목침이냐, 고민케 한다. 그럼에도 과감히 올려두는 것은 내용이 너무 좋아서다. 비싸고 두꺼우니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 주기가 미안하다기보다, 그 때문에 자꾸 이런저런 추천목록에서 제외되는 것 같아 오히려 책에 미안해진다고 하면 적당한 표현이 될까. 신의 존재증명, 창조론 등 기독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논쟁을 다 다뤘고, 그 논쟁에 대한 답변도 모두 다 들어 있다.

글·조태성 (서울신문 문화부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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