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김현경 저는 결혼한 지 8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명절 무렵이 되면 가슴이 답답해져요. 소화도 잘 안 되고요. 항상 명절 이틀 전에 시댁에 가는데 도착한 당일엔 시댁에서 가족들이 먹을 각종 전을 하루종일 부쳐요. 그 다음 날은 큰댁에 가서 차례 준비를 하고요.
큰댁 며느리가 한 명뿐이라 음식 장만에 청소까지 해야 해요. 이틀 동안 전을 부치다 보면 기름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에요. 잘 먹지도 않는 명절 음식을 정말 이렇게 많이 해야 하는지, 늘 의문이에요.
이인선 저희 시댁은 경북 예천인데, 집성촌이라 마을에 계신 분들 대부분이 친인척간이더라고요. 결혼해서 맞은 첫 명절인 추석 때 종가인 큰댁에 차례 준비를 하러 갔어요. 부엌에 쌓인 재료들을 보고 깜짝 놀랐죠. 그날 부친 전만 자그마치 다섯 광주리였어요. 점심 전에 시작한 일이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끝이 났어요.

날은 더운데, 어른들이 ‘맨살 드러내면 안 된다’고 반팔도 못 입게 해 정말 힘들었어요. 그 뒤론 저도 명절만 되면 머리가 아팠어요.
가기도 싫었고요. 그런데 3년 전, 종가 어른들이 돌아가신 후 큰댁형님이 제사를 모셔와 많이 바뀌었어요. 일단 음식 양이 엄청나게 줄었고, 10가지가 넘던 전의 가짓수도 확 줄여 훨씬 수월해졌지요.
음식만 간소하게 해도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잖아요.
최은수 맞아요. 저도 종갓집 외며느리라 음식을 많이 해요. 어머님이 젊으셨을 때는 손님들이 많아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해야만 했다는데 지금은 안 그렇거든요. 보통 20명 남짓인데, 여전히 음식 양은 예전 수준으로 하시려고 해요. 차례상에 올리는 것 외에도 가족들 먹을 용도로 전과 튀김 등을 또 잔뜩 만들어야 하고요. 만드는 동안 기름 냄새에 질려 명절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어요.
게다가 남자들은 다 누워서 TV만 보고 있고, 그래서 더 짜증이 나죠. 한번은 너무 얄미워서 남편한테 ‘밤이라도 까라’고 했어요. 어머니 표정이 좋지는 않으셨지만 그때 이후로 밤을 까는 건 남편 담당이 됐어요. 음식을 간소하게 하고, 남자 여자 구분없이 명절 준비를 같이하면 명절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지현 저는 큰며느리인데, 저희 시댁은 아들만 둘이에요. 아버님이 차남이라 차례는 큰댁에 가서 지내요. 그런데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큰어머니와 둘째인 저희 어머니가 각각 음식을 분담해서 준비하는 모습이었어요. 어머니가 손이 많이 가는 전 종류를 만들고, 큰어머니는 다른 음식들을 준비하는 식으로요.
명절이면 집안 일 분담 문제로 동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는데 그런 식으로 분업을 하니 그 아래 있는 며느리들도 편하고, 좋더라고요. 게다가 저희는 며느리가 저 하나라 어머님이 아예 전 부칠 때 가족 모두 일을 거들도록 시키세요. 아버님도 예외가 아니고요.
김현경 정말 부럽네요. 저희 시댁은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도와주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가만히 앉아 TV만 보는 사람들에게 계속 뭔가 차려내야 한다는 게 어떨 땐 너무 화가 나요.
이인선 그 기분 잘 알아요. 제가 시골에서 명절 치를 때, 명절 전날부터 당일까지 수시로 들고 나는 손님들 때문에 상을 몇 번을 차렸는지 몰라요.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도 생각해서 다른 집에 방문할 때는 아무리 친척간이라도 시간 맞춰 한꺼번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현경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도 친정에 못 가게 될 때 정말 속상해요. 저는 엄마가 혼자 계셔서 점심 먹고 나면 얼른 출발하고 싶은데, ‘시누들 얼굴 보고 다음 날 가라’고 붙잡으시더라고요. ‘시누들도 어머니 뵈러 오는데, 저도 우리 어머니 보고 싶어요’라고 애교를 좀 섞어 말씀드렸더니 보내주시더라고요.
이인선 명절 휴가가 짧을 때, ‘아범 힘든데 친정에는 주말에 가라’고 하실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서운하더라고요. 명절에는 ‘고생했다’는 말과 ‘얼른 친정 부모님 뵈러 가라’, 그 말이 사실 제일 듣고 싶잖아요.
이지현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저희 집이 딸만 셋이거든요. 지금은 친정 부모님도 명절에 큰댁으로 가시지만 나중에 더 나이 들어 두 분만 남게 되면, 설과 추석을 시댁과 친정에서 번갈아가며 지내는 건 어떨까 하고요. 요즘은 딸만 있는 집들이 많잖아요. 남편과는 그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긍정적인 반응이었어요. 물론 어른들이 아시면 싫어하시겠지요?
최은수 그럴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긴 한데 우리 대에서 이루어지긴 어렵지 않을까요. 전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테니까요. 시대가 바뀐 만큼 현실과 맞지 않는 전통은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변화들이 이루어진다면 며느리들이 의무와 책임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명절 준비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주부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해진다’고 하잖아요. 음식을 간소화해 집안 일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고, 남자들도 명절 준비에 참여하게 하고, 친정에 당당하게 갈 수 있는 명절이라면, 누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것 같아요.
글·최선희 객원기자 / 사진·서경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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