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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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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슴 아픈 만화 한 권을 읽었다. 앙꼬의 <나쁜 친구>. 제목만 보면, 나쁜 친구 만나 삿된 길로 걸어 들었던 삶을 되돌아보는 내용이라 짐작할 터다.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여중 시절에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가출했으니, 일탈했던 삶을 회고한 것은 맞다. 진주는 풍요로운 가정 형편에 가족애도 넘치는 집안 출신이다. 그런데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 잘못된 길로 빠져 들어간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주를 때리는 일밖에 없었다. 진주가 아빠를 미워하지 않은 이유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나 언니의 사랑이 그나마 방파제 역할을 했다.

진주가 가출하고 술집에 들어가는 수렁에 빠졌을 때 거기서 건져준 것은 술집마담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말하며, 다시는 발 딛지 말라고 해 주었다. 훗날 진주는 그가 자신을 안아 주었기에 돌아올 수 있었노라 회고한다. 아쉬운 것은, 확실히 삶의 배경이 다른 진주가 삐딱해진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의 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성인의 시각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10
진주에게 나쁜 친구가 있었다. 정애였다. 요즘말로 하면 일진이다.
또래들을 규합해 후배들 군기 잡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연애하는 불량학생이다. 정애의 집은 불량청소년들의 아지트였다. 집에 모여 여자애들은 화투치고 남자애들은 문신을 새겼다. 가출하자고 한 것도 정애고, 술집에 가자고 한 것도 정애다. 아버지는 건달이고 여동생이 하나 있다.

어머니는 가출했다. 어느날 어머니가 돌아와 이혼을 요구하자 아버지가 난리를 부렸다. 정애가 진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싶었다. 진주가 재촉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애는 가출했고, 끝내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애가 나쁜 친구가 되는데, 왜 이런 판단을 틀렸다 했을까?

<나쁜 친구>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으레 정애가 나쁜 친구라 여기는 통념을 뒤집고 있다. 진주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마음을 잡지 못했다. 중학교 때 함께 놀았던 친구가 화내며 연락하지 말라 할 정도였다. 그래도 진주에게는 재주가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잘 그렸다. 만화가가 되었다. 부모님의 후원에 힘입어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다 정애를 잊었다. 너무 세상을 일찍 알았다며 상념에 빠졌던 정애였다. 나중에 분식집 같은 가게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는 정애였다.

나
만화가가 된 진주는 그 시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단다. 이유는?
“난 더 이상 그곳에 속해 있지 않으니…. 재미있었던 일들은 모두 이야깃거리로 남았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렸고 난 즐거웠다고,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고 만족했다.”

작가의 특권이리라. 상처가 거름이 되어 작품이라는 열매를 맺으니 말이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이 만화가 분명히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그런데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정애가 나쁜 친구가 아니라면 누가 나쁜 친구라는 말인가?

어느날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진주는 아이를 업고 있는 정애를 만난다. 진주가 먼저 알아보았다. 삶에 지친 정애는 진주를 발견하지 못했다. 얼굴에는 맞아서 생긴 상처가 남아 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그 정애를 외면한 이는 바로 진주였다. 어려운 시절, 함께하며 우정을 쌓았던 친구를 모른 척했다. 자신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진주를 끌고 들어가지 않았다. 무엇이 두려워 알은체하지 않았을까? 진주는 정애의 나쁜 친구였다.

앙꼬라는 만화가를 주목하자. 우리 만화의 수준을 문학의 자리까지 끌어올릴 기대주다.

글·이권우 (도서평론가·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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