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국가장학금을 받은 직후 박은경(21·울산대 중국어중국학과 3년)씨는 교정에서 날아가는 한 무리의 새를 보고 문득 생각했다.
새가 아무리 창공을 높이 날고, 광활한 대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해도 감정을 모르는 일개 동물에 불과하지만, 인간은 비록 낮은 땅에서 가려진 하늘을 볼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존재라고.
박은경씨는 2012학년도 1학기 국가장학금을 받아서 무사히 학기를 마쳤다. 2학기 국가장학금도 확정된 상태다. 박씨는 “국가장학금을 받아 지난 학기를 등록금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며 “한편으로는 대학 입학 후 등록금 때문에 고군분투했던 지난 2년간의 내 모습이 떠올라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내가 가장 불행한 학생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남들은 여유 있는 부모를 만나 행복한 대학생활을 하는데, 저는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밤낮없이 걱정하고 아르바이트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박씨는 현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중학교 이후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졌기 때문에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주말에 학교 급식이 나오지 않아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데, 쌀은 있지만 반찬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급식비는 늘 밀려 있었다.
친구들이 브랜드 가방을 들고 와서 자랑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친구들은 무슨 돈이 많아 저렇게 비싼 가방을 살 수 있을까.’ 박씨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말 그대로 ‘먹고사는 것’만이라도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한 가지 마음뿐이었다. 브랜드 가방을 부러워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박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울산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등록금 통지서를 받고 보니 기쁨보다는 걱정이 밀려왔다. 첫 학기 등록금으로 3백만원이 필요했다. 박씨는 “매일 하늘을 보며 ‘하나님, 제가 대학을 가지 말까요?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시면 가지 않을게요’라고 기도하며 퉁퉁 부은 눈으로 걸어다녔다”고 회상했다.
첫 등록금은 박씨의 어머니가 아는 사람에게 이리저리 돈을 빌려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 학기 등록금 고지서가 나올 때마다 박씨는 하늘을 보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3학년 1학기 시작을 앞둔 지난해 겨울. 박씨는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던 중 교내에 붙은 ‘국가장학금’ 신청에 관한 포스터를 보았다. ‘2012년 국가장학금 대상자가 대폭 확대되었으니 필요한 학생들은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박씨는 ‘정말 국가에서 장학금이 나올까’라며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장학금을 신청했다. 필요한 서류는 팩스로 보냈다. 혹시라도 팩스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동시에 방학이면 늘 해오던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았다. 집안 형편상 목돈 마련이 힘들었기 때문에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조금씩 모아, 등록금도 보태고 생활비로도 써야 했다. 한 살 아래인 남동생도 대학생이었으나 한 학기를 마치고 군에 자원해 갔다. 일단 두 명이 한꺼번에 대학을 다니는 것은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박씨의 말이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하고 난 후 3학년 1학기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든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고지서에 내야 할 등록금총액이 ‘0원’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장학금을 받고 있었는데, 학교장학금과 국가장학금을 함께 받아 제가 내야 할 등록금 액수가 한푼도 없었던 겁니다. 그때의 기쁨과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박씨는 “세상에는 대학 등록금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등록금이 없어 자신의 꿈과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며 “만약 내가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했으면 대학을 더는 다닐 수가 없고, 내 삶과 꿈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막막했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장학금을 통해서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었고, 곧바로 교류학생에 선발되어 서울의 성균관대학에서 3개월간 수업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서울에서의 생활비까지 모교(母校)에서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정말 돈 걱정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해본 것은 올해가 처음인 것 같아요.
서울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저 자신도 몰랐던 저를 발견하는 재미를 누렸어요. 이 모든 게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장학금을 받은 순간부터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박씨는 “내가 받은 돈이 결국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통해 받은 것이 아니겠느냐”며 “새삼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다 보니 늘 마주치는 학교 청소 아주머니나 경비원 아저씨의 모습도 저에게는 새롭게 보였어요. 경제적 지위나 명예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부지런하게 수행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진정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좋은 분들이 항상 제 주위에 있었는데 제가 제대로 몰라봤던 거죠.
새가 아무리 높이 난다고 한들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지만, 저는 사람이니까 ‘감사’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잖아요.
사람에게는 주변의 상황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도 더 좋은 것으로 창조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게 감사하는 마음의 힘인 것 같아요.”
박씨는 졸업 후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비록 제가 처한 환경은 어려웠지만 하나님이 함께해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힘든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본다면, 시간이 지났을 때 그 힘들었던 상황이 도리어 자신을 더 성숙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올바른 생각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글ㆍ이상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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