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박동해(40)씨는 중도 실명 장애인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당한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차에 부딪쳐 쓰러지면서 쓰고 있던 안경파편들이 눈을 찔러 3년 동안 아홉 번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실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수술을 받던 날, 담당 의사는 그의 부모님에게 “시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재활교육을 받게 하라”고 권했다.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고통스러운 수술들을 견뎌온 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꿈 많은 학창 시절을 꼬박 집과 병원에서 보내며 극심한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죽음을 결심했다. 여러 약국들을 돌며 수면제를 사 모은 뒤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죽음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그제서야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부모님의 모습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난했지만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한없는 사랑을 주셨던 부모님, 아들이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아픔도 그에 못지않은 것이었음을,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시각장애를 받아들인 그는 서울맹학교 고등부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아직 한쪽 눈이 흐릿하게나마 시력이 남아 있을 때라 자신보다 더 안 보이는 학생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도 1년 새 시력이 급격히 악화돼 결국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전맹 상태가 되었다.
“제가 정말 힘들었던 건, 눈의 장애보다 세상의 편견이었어요. 한번은 친구와 함께 아침에 식당에 들어갔는데 주인에게 ‘재수 없게, 아침부터’라는 말을 들었어요. 정말 큰 상처였지만 한편으로는 ‘장애인이 한 인격체로서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인으로 당당히 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지요.”
‘무엇이든 배우자’는 마음으로, 당시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직업교육으로 받고 있던 침구(鍼灸)와 안마를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1997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학비는 일본 문부성 장학금을 받아 해결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지원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던 일본에서 그는 원없이 공부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일본 후생성이 실시하는 국가고시에서 침사 면허증, 안마·마사지·지압사 면허증을 취득했고 뛰어난 회화 실력으로 일본어 능력 검정시험(1급)까지 통과했다.
2002년에 귀국한 뒤에는 시각장애인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 창업교육 강사로 활동했다. 한일 국제교류 행사 때는 통역 요원으로도 참여했다. 일상이 바쁘게 흘러갈수록 오랫동안 품고 있던 교사의 꿈은 더욱 강렬해졌다. 또다시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지만 대학 입학 방법이 다양해진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조선대의 문을 두드렸고, 마침내 합격통지를 받았다.

“막상 합격을 하고 나니 등록금이 문제였어요. 한창 걱정을 하던 중에 한국장학재단을 알게 되었죠. 조심스럽게 문의를 했는데 대상자가 된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 덕분에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고, 열심히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었어요.”
전맹 시각장애인 입학이 처음이었던 조선대에서는 그를 위해 여러 가지 지원책을 마련해주었다. 그는 현재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대독, 대필, 자원봉사학생 연결 등 학교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비장애 학생에 비해 훨씬 많은 학습 시간이 필요하다. 강의 내용은 전적으로 녹음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노트에 옮기고 점역화하는 작업까지 필요하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첫 학기 시험에서 차석을 차지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도와준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며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지원들이 있다면 시각장애인들이 무한히 자기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아 교육에 헌신하고 싶어 특수교육학과를 선택한 그는 봉사 활동도 열심히 한다. 지체장애 초등학생들과 함께하는 방학 프로그램에도 참여했고,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보이는 중학생과 1대1로 연결돼 일본어를 가르쳐주는 멘토로도 활동했다. 다양한 장애를 안고 있는 학생들과의 만남은 그에게도 매우 유익한 경험이다.
“아이들도 신기해해요. 저는 아이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때로는 아이들이 제 눈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이 저를 보면서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중도(후천성) 장애인들의 희망이 되고 싶어요. 저 같은 중도 장애인들은
선천적 장애인들에 비해 더 힘들어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장애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죽음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도 계속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고요. 저를 보면서 그분들이 당당히 세상 속으로 걸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수기를 통해 ‘나를 지원해주는 든든한 한국장학재단과 국가장학금이 있기에 외면받고 있는 장애인의 재활 교육과 직업 교육을 위해 현실과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또 하려고 하는 강한 의지만 있으면 경제적 문제를 딛고 목표를 향해 도전할 수 있다. 배움과 노력이 없으면 가난은 되풀이되고, 사회약자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썼다.
조금 느릴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과 성취를 반복하며 목표를 향해 가는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글·최선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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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