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나보다 어려운 사람, 도우면서 살고 싶어요. 국가장학금을 받고 나서 여유가 생긴 첫 방학, 봉사활동하면서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었지요.”
국가장학금을 받아 등록금 걱정에서 벗어난 손후락(25)씨는 대구가톨릭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 중이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 휴학을 반복하면서 한때는 공부를 포기할 생각마저 했다.
그러나 국가장학금은 손후락씨에게 희망을 줬다. 봉사활동에 동아리활동, 복수전공 공부까지 누구보다 알찬 방학을 보내고 있다.
여느 가정과 다름 없이 단란했던 손후락씨의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건 고등학교 때 일이었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하면서 주변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잠적한 후로 손후락씨 어머니는 두 아들을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예민하던 사춘기 소년의 마음에 상처가 될 법한 일이었지만 손후락씨가 2006년 대학에 진학하며 선택한 전공은 사회복지학이었다.
손후락씨는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어려운 일을 겪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등록금을 대기에도 버거운 현실은 손후락씨의 학교생활을 계속 방해했다. 생활비 대느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다가 아예 휴학계를 내고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월 2백만원의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 어머니 손에 쥐여준 채 입대했다. 손씨는 “일하는 내내 공부하며 대학생활을 즐기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며 “그저 내가 군대 가 있을 동안 어려울 어머니와 남동생 형편만 생각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2년 군 생활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는 손후락씨는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진지하게 고민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잠깐 일하던 공장에 취직할까 생각했었다”고 한다. 마침 공장에서도 정식사원으로 채용해주겠다며 제안했던 터였다. 그러나 마음을 바꾸고 학교로 돌아오게 된 것은 친한 누나의 한마디였다. “할 수 있는 걸 하고 사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지.” 손후락씨는 “바이킹을 탄 것처럼 마음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손후락씨가 하고 싶은 일은 남을 돕는 일이었다. 대학 공부를 계속한다면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공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찾아나섰다. “시청에서 사무 보조를 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손후락씨는 말했다. “복지 혜택을 받으러 찾아온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2010년 학교로 돌아갔을 때 손후락씨는 훨씬 활기에 차 있었다.
매시간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수업을 듣는 손후락씨를 기특하게 본 교수님이 동아리 활동을 함께하자며 권유하기도 했다.
손후락씨는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하는 ‘절주 캠페인’에 참여했다”며 “청소년 음주문제를 해결하려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면서 예전보다 더 활발한 학교생활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고 근로장학생 활동을 하며 2010년 2학기를 마쳤다. 교수님 추천으로 일본으로 봉사활동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새 학기를 맞으며 손후락씨는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졌다.
학교생활과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됐지만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등록금이 없는데, 또 휴학을 해야 하나 앞이 막막했다”고 한다. 마침 손후락씨의 눈에 띈 것이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 신청 광고였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게 지급하던 1유형 장학금이 한부모가정자녀에게도 확대 지급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손후락씨는 장학금을 신청했다. “크게 보도됐으니 지원자도 늘었을 거라 예상했지만, 돈 걱정을 덜면서 공부할 유일한 기회여서 절박했다”고 말했다. 서둘러 서류를 준비해 신청하고서는 초조한 마음에 직접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 손후락씨는 “수화기 너머로도 바쁘다는 것이 느껴지는 데 친절하게 절차를 알려준 직원들이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2년 3월, 장학금을 받고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새학기를 시작했다. 손후락씨는 “평소에 관심 있던 정신보건 분야 공부를 더 하려고 심리학 복수전공을 신청했다”고 했다. 들어야 할 강의 수가 많아져 한층 빡빡해진 학교생활이 마냥 즐겁다는 손후락씨는 “등록금 걱정을 덜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며 “복수전공도 신청하고 봉사활동도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 여름방학 때는 경주 지역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사회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손후락씨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만큼 봉사활동을 꾸준히 다니고 싶었는데 그동안 방학 때마다 일하느라 몇 번 다녀오지 못했다”며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선생님’이라고 따르는데 정말 귀여워 계속 함께하고 싶었다”고 소감을 얘기했다. 또 “정신보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미술 치료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도 관심이 있다”며 “종종 찾아와 아이들과 부대끼며 경험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가난은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방해물이었다.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꿈을 위한 노력을 포기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뭘 하고 있는거지’라는 좌절감을 맛보곤 했다. 그러나 국가장학금은 손후락씨 삶에 변화를 가져왔다.
손후락씨는 “물을 길어올리려면 마중물이 필요하다”고 운을 떼었다. “한 바가지 정도의 물만 있으면 되는데, 마중물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물을 품고 있어도 펌프에서 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거든요.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은 나에게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했어요. 이 도움을 잊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울 거예요.”
글·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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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