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여름에는 장르소설만 한 게 없다고들 한다. 그럴 만하다.
장르소설이라고 하는 순간, 몇 가지 전제가 깔려 있게 마련이다. 일단, 훌륭한 작품이 내장하고 있는 복잡한 체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실로 고전이나 명작에 드는 작품들은 형식을 비틀거나 작가의 사유를 장황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잦다. 거기다 읽는 이가 스스로 상징을 해석하게 하는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고전이나 명작은 깨닫기 위해 읽어야 하는 작품인지 모른다.
그런데 장르소설은 널리 인정된 장르적 속성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지적 고투를 감수하지 않고도 읽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다른 하나는 대중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장르소설은 이런 구속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니 이야기를 펼쳐나가기 훨씬 쉽고, 읽는 이 처지에서는 흥미가 넘쳐나게 마련이다.
물론, 그러다 보니 장르소설을 낮추어 보았다. 허황한 이야기로 대중을 현혹해 돈 버는 상품인 양 함부로 말해 왔다. 과연 그럴까?
분명히 그런 점도 있어 보인다. 고전이나 명작을 읽어온 세련된 교양인이 보기에 말도 되지 않는 작품도 수두룩하다.
그렇지만, 모든 장르소설이 편향된 평가를 받을 만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장르소설이 영화가 되는 추세가 강화되면서 역량 있는 작가들이 출현하고, 기존 작가들이 장르소설의 특징을 차용해 작품을 써서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장르소설의 문학적 성향의 강화라고나 할까,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
주변에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 여럿 있다. 이들이 최근에 입을 모아 칭찬하는 작품이 있어 읽어보았다. 외국작가라면 이 자리에서 굳이 소개하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워낙 뛰어난 이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오랜만에 남들에게 읽어보라 권할 만한 국내작가의 장편소설이 나왔다. 배명훈의 <은닉>이 바로 그것. 킬러의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개인적으로 고용된 킬러가 아니라 국가 소속이라는 점이다. 작가가 상정하는 미래는 남북한이 연방국가를 형성한 때이다. 완전한 통일국가를 구상하지 않은 것은 연방국가 안에서 벌어지는 남북한의 미묘한 갈등과 그 연장선에서 일어나는 권 력암투를 염두에 둔 듯싶다.

조직은 관례로 11년간 활동한 요원에게 1년간 휴가를 준다. 사람 죽이다 놀아도 되니 좋을 듯싶지만, 사실 이 기간을 통해 요원을 재평가한다. 휴가 중인 주인공에게 호출이 온다. 최근 숙청당한 장무권의 딸 은경의 동향을 보고하라는 명령이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복잡해지고 재밌어진다. 둘은 동창인데다 으레 그렇듯 연정이 싹튼 적이 있는 사이다. 상황을 보니, 은경이 위험하다 판단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작업에 나선다. 조직의 뜻과 무관하게 말이다.
이 정도만 해도 첩보영화 뺨치는 이야기가 펼쳐질 만한데, 죽은줄 알았던 동창이자 같은 조직의 전략가이던 은수가 나타난다. 속고 속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이 작품을 먼저 읽은 친구들이 왜 좋다고 말했는지 알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연방이 장무권 잔존세력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은 핵잠수함을 소유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런데 이야기는 인간이 품고 있는 권력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작가는 그것을 일러 악마라 표현한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빠르게 전개되지만, 사변적인 대목이 많이 나와 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 작품을 읽으며 교훈이나 메시지를 일부러 읽어낼 필요는 없을 성싶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제목이다. 도대체 작가는 무엇을 숨겨 놓았을까? 그것을 알아가는 길은 일종의 미로다. 무더운 한여름밤, 그 미로에 갇혀보고 빠져나오는 지적 즐거움을 누려보기를.
글·이권우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교수·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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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