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36년 동안 20억원을 불우이웃 돕기에 쓴 공로로 올해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진용(61)씨는 충주 지역에서 ‘불우이웃의 대부’로 불린다.
“아주 가난한 집은 정부에서 지원해 줍니다. 그런데 그보다는 괜찮지만 그래도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은 도와주는 곳이 없으니 나라도 도와야지요.”
남을 도운 일이 워낙 많다 보니 과거 누구에게 얼마를 지원했는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그건 그가 특별히 기억해 두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서도 그는 “나보다 더 큰일 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라며 겸손해 했다.

이씨의 기부 활동은 다채롭다. 충주시 사회복지기금에 수백만원을 후원하는가 하면 지역 노인정 잔칫날에는 금일봉을 보냈다.
저소득가정·소년소녀가구·독거노인에 매년 수백만 원을 지원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매년 설에는 형편이 어려운 1백~2백여 가구에 10킬로그램 쌀 한 포대씩을 돌렸다. 또 결식아동을 위한 기부금과 난치병 투병자·보훈대상자·재해가정에 한 해 수십만~수백만원을 지원해 왔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나누는 금액이 매년 5천만~7천만원에 이른다.
현재 연매출 40억, 종업원 12명을 거느린 건축자재업체 대표인 이씨가 자신의 형편이 좋아서 나눔을 실천한 것은 아니었다. 6남매 중 넷째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거지들과 밥을 나눠 먹었다.
이씨가 어린 시절 우리나라는 모두가 가난한 나라였다. 언제든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보온밥솥은커녕 밥때가 아니면 밥 구경조차 못할 만큼 어려워 밥때가 되면 거지들이 구걸하러 이집저집 기웃거렸다. 이씨는 엄마의 식사 준비를 돕던 누나들이 밥을 뜨면 자신의 밥그릇을 들고 나가 거지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둘째누나가 “넌 뭐 먹니?”라고 물을 정도로 말이다.


이씨의 봉사인생은 1976년부터 시작됐다. 매형이 운영하는 건축자 재상에서 일할 때 자재를 배달하던 학교에 기업들이 피아노와 학용품을 기증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기부의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장 학용품 기부를 시작으로 학교 담장 설치, 장학금을 지원했다.
1978년 매형으로부터 독립한 이씨는 성실하게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 1981년 충북 제천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성금 2천3백만원을 기탁했다. 자신에게도 사업자금이 꼭 필요했지만, 가뭄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제천시청에 성금을 내고 충주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반 년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그 사이 회사는 도산했고, 이후 이씨와 가족은 단칸방을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막노동, 고추행상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재기에 힘써온 이씨는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민센터에 매달 보내는 20만원만큼은 한 번도 끊지 않았다. 불우가정 어린이 3명에게 고등학교 때까지 지원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동안 그의 아내 윤영숙(56)씨는 속이 타들어갔다. 당시 한 달 수입 약 50만원 중 20만원을 지원하고 보니 정작 딸 경희(34)씨와 아들 병수(32)씨를 어렵게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인 줄 모르고 결혼했다”는 윤씨는 “지금은 다 이해하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먼저 물어보고 기부한다”며 웃음 지었다. 아버지 사업을 돕는 아들 병수씨도 “이제는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이씨가 남을 도운 이유는 무엇일까. “남을 도운 게 내게 선물이 됐어요. 내가 하루 일하면 10명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리 힘들어도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 수 있었지요.”
이씨의 선행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그가 졸업한 충주고를 비롯해 충주 지역 선후배의 도움도 이어졌다. 동문들은 건물이나 집을 지을 일이 있으면 이씨에게서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했다. 이씨는 “혼자서 어떻게 그 많은 기부를 했겠나. 다 남들이 도와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씨는 보훈대상자들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 그는 2001년부터 매년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면 충주시 보훈지청에 5백만원씩 기탁해 왔다. 이씨는 이마저 “부족한 느낌”이라고 했다. “충주시 보훈지청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보훈지청으로 기부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나라를 지키다 다친 사람들에게 더 나은 대우가 필요합니다.”
부인 윤씨는 요즘 남편의 치아건강이 예전보다 많이 나빠졌다고 걱정했다. 단단한 것을 못 씹어 무른 음식만 먹는다는 것. 자신의 상황이 좋든 나쁘든 한결같이 남을 도와온 이씨는 앞으로 건강이 나빠져도 일과 기부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주변에서는 복지법인을 만들라고 하지만, 그 돈으로 한명이라도 더 돕고 싶습니다. 건강이 허락되는 한 계속 일하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생각입니다.”
글과 사진·남창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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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