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스타플레이어는 명장이 될 수 없다.” 이제 이 말은 적어도 홍명보 감독에게는 적용할 수 없게 됐다. 축구대표팀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역대 올림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빛나는 선전 뒤에 묵묵히 자리한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이 주목을 받은 이유다.
홍명보 리더십의 기본 전제는 ‘소통과 존중’이다. 홍 감독은 지난 2009년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의 감독을 맡으며 감독 데뷔를 했다. 그 시절 스무 살가량 어린 선수들에게 존칭을 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김태영 수석코치는 한 인터뷰에서 “홍 감독이 선수들을 다그친 나를 혼내며 ‘선수들에게 언성을 높이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더라. 나를 낮추니 선수들이 따라 오더라’고 했다”는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선수들 중 상당수가 당시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서 홍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선수들이다.

선수가 어려운 순간을 맞을 때마다 ‘방패’ 역할을 자처하는 것도 홍명보 리더십의 특징이다. 지난 6월 병역 회피 논란에 휩싸인 박주영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 감독은 “박주영이 군대에 안 가면 내가 대신 가겠다고 말하려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박주영의 심리적 부담을 함께 짊어지는 모습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이 어려운 순간을 맞을 때마다 감싸는 모습을 보여줬다. 멕시코와의 1차전에서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박주영과 김보경을 스위스와의 2차전에도 기용한 것이 그 예다. 홍감독은 “사람들은 선수가 가장 잘할 때만 기억한다. 좋은 순간이 아니더라도 선수에게 믿음을 보여주면 선수는 해낸다”고 했다. 박주영과 김보경은 스위스전에서 나란히 골을 넣으며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양학선은 이번 올림픽 최고의 ‘깜짝 스타’ 중 한 명이다. 최고난이도 7.4의 기술을 성공하며 대한민국에 체조 첫 금메달을 안겨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양학선이 두번째 점프를 완벽하게 수행한 후 착지한 순간 화면에는 펄쩍펄쩍 뛰는 조성동 감독의 모습이 나타났다. 평소 엄격하다고 알려진 조 감독의 평소 모습과 사뭇 달랐다.
조 감독 또한 선수 출신이다. 현역 시절에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그가 속했던 한국 대표팀은 1979년 세계대회에서 꼴찌에서 4번째 성적을 기록했다고 한다.
조 감독은 “그때 안마 종목에서, 지금은 창피하지만 10점 만점에 6.4점밖에 받지 못했다”며 “아, 이래선 안 되겠다. 제대로 좀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 후 지도자 생활을 하며 유옥렬과 여홍철을 키워냈다.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체조 금메달의 씨앗은 이미 그때 뿌려졌다.
조 감독은 1947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66세다. 1992년생인 양학선보다 45세 많다. 그래서인지 조 감독은 양학선의 선수 인생에 엄하면서도 자상한 ‘할아버지’ 같은 존재다. 조 감독은 올림픽을 앞두고 양학선에게 말을 줄이는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양학선이 지난해 연말에 열린 한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후 춤을 추는 등 ‘끼’를 분출하는 모습을 본 후였다고 한다. 조 감독은 “뜀틀은 3~4초의 공중 연기에서 승부가 갈린다. 선수는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조 감독은 선수와 훈련할 때는 엄하지만 뒤에서는 선수를 위해 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난이도 기술 ‘YANG HAK SEON 1’의 완성 과정에서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체육과학연구원의 송주호 박사는 “조성동 감독 같은 노장 감독이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지 않고 스포츠 과학에도 귀를 기울이는 유연한 모습이 인상깊었다"고 했다.


유도 90킬로그램 이하급에서 금메달을 딴 송대남과 정훈 감독의 맞절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큰 감동을 준 장면 중 하나다. 송대남이 서른셋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체급을 올린 이유는 81킬로그램급의 김재범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체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가 작기 때문에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송대남이 스테이크를 13장씩 먹은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됐다.
송대남이 이렇게 독하게 훈련하는 동안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한 사람이 정 감독이었다. 훈련을 마친 후 드디어 올림픽 결선, 정감독은 누구보다 열심히 금메달을 위해 싸웠다. 쿠바 출신 선수 곤살레스가 도망가면서 계속 빗당겨치기 위장공격을 시도하는 것에 항의하다가 끝내는 주심으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았다.
송대남이 금메달이 확정되자 정훈 감독을 보러 관중석으로 달려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송대남 선수가 큰절을 하자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자신도 맞절도 답례하는 정훈 감독의 모습은 전 세계에 중계됐다.
정 감독은 현역 시절 뛰어난 기량을 보인 선수였다. 아시안게임에서 두 번이나 우승했지만 올림픽 금메달만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71킬로그램급에 출전한 정 감독은 승승장구하며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헝가리 선수와의 경기에서 정 감독은 줄곧 경기를 리드했다. 올림픽 결승이 코앞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경기 종료 5초를 남기고 상대 선수는 정 감독을 매트에 눕혔다. 정 감독은 결국 동메달을 들고 귀국했다. 그 후 20년. 정 감독이 지도한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땄다.
글ㆍ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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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