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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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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사건을 바꾼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까?

갈림길에선 늘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 보지 않은 낯선 미래에 대한 동경도 언제나 삶을 자극한다.

이 ‘만약에’라는 가정에 시간여행인 ‘타임 슬립’을 장착한다면 그저 그렇고 그런 공상과학(SF)소설로 전락하기 쉽다.

하지만 전 세계에 3억5천만명의 독자를 지닌 이야기꾼 스티븐 킹(65)이 소설을 썼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 <샤이닝> 등 대표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원작자인 킹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장에서 손을 떼지 못하도록 촘촘하게 얽힌 서사의 그물을 쳐 놓았다. 그리고 독자들은 송두리째 그 그물에 걸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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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신작 <11/22/63>은 미국 역사상 최연소 (선거로 선출된)대통령이자 불황과 냉전, 전쟁의 공포로 치닫던 시기에 희망을 제시한 존 F. 케네디의 암살을 다룬다. 강대국의 수장이 맥없이 삶을 마감하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건을 돌려놓는다면 ‘어떻게 역사가 달라질 것인가’ 하는 그럴듯한 가정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흥미롭게 풀어 간다.

 

3사실 시간여행이란 소재는 작가에겐 다소 생소한 것이었다. 킹은 지난해 미국에서 이 책을 처음 출간하면서, “이런 글을 써 본 적이 없어 마치 새 신발에 발을 구겨 넣은 것처럼 이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독자가 자동차(영화 <백 투더 퓨처>)나 파란 전화부스(영화 <닥터 후>)를 타고 떠나는 요란한 시간여행을 떠올렸다면 실망할 게 뻔하다. 드라마 <닥터 진>의 주인공처럼 급작스럽게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빠져드는 강압적인 시간여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35세의 영어교사 ‘제이크 에핑’은 사실 작가의 분신이다. 미 메인주 출신으로, 세탁공장 인부와 건물 경비원을 전전하다 작은 공립학교의 영어교사로 일했던 킹은 역시 메인주 출신의 궁핍한 영어교사 에핑을 등장시킨다. 자전적 얘기인 양 소설을 이끌어가는 셈이다.

어느날 동네 음식점 주인이자 친구인 앨 템플턴은 에핑에게 비밀스러운 제안을 한다. 템플턴의 음식점 창고에 1958년 9월 9일 오전 11시58분의 메인주 리스본 폴스로 이어지는 시간통로가 존재하며, 이곳을 통해 시간여행을 해 보라는 것이다.

시간여행의 규칙은 독특하다. 현재로 돌아와 다시 과거로 출발하면 원점인 1958년 9월 9일 오전 11시58분이 된다. 또 1분이든 10년이든 과거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현실 세계에선 딱 2분의 시간만 허비될 뿐이다.

시험 삼아 불과 몇 시간의 시간여행을 마친 에핑에게 템플턴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막아 보라고 제안한다. 1963년 11월 22일 벌어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막으려면 과거로 돌아가 적어도 5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폐암 말기인 템플턴에겐 불가능한 숙제였다.

만약 케네디가 죽지 않았다면? 템플턴은 후임 대통령인 존슨과 닉슨에 의해 베트남전이 확전되지 않았을 것이며, 6만명의 미군과 수백만명의 베트남인이 목숨을 부지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하지 않고 인종 폭동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과거의 미묘한 움직임이라도 변하면 후일 큰 변화를 초래한다는 ‘나비효과’에 기원을 둔 얘기다.

그러나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는 건 만만치 않다. 주인공이 과거의 모든 사건을 알고 있다고 해도, 미래에 영향을 주는 작은 일이라도 바꾸려 들면 의문의 사건이 끊임없이 터져 이를 방해한다.

외줄을 타듯 위태로운 상황과 기나긴 시간의 기다림을 뚫고 주인공은 마침내 역사의 진실에 한발 다가서는데…. 잠시 ‘스포일러’가 되자면, 소설에는 지구 멸망과 역사의 후퇴 등 할리우드적 영화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다. 12월 초에 발간될 2권(전 2권)에는 범인(凡人)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역사’라는 메시지가 담긴다.

글·오상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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