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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차별없는 책읽기 장애없는 ‘독서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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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작가 작품 중에 ‘만무방’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농사 수확해 봤자 빚쟁이와 지주에게 다 빼앗길 거라 생각해서 벼를 베지 않는 농사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논의 벼가 계속 없어지는 거예요. 농사꾼의 형이 도둑 잡겠다고 보초를 서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 논의 주인인 동생이 자기 벼를 훔치고 있었던 거예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죠.

김유정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무얼 얘기하려 했을까요? 사실 김유정 작가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절박함, 웃지 못할 촌극 같은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거예요.”

6월 26일, 강원도 춘천 김유정문학촌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한국농아인협회 소속 청각장애인 70명.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012 찾아가는 장애인 독서문화운동’의 하나로 진행한 ‘작가와 함께하는 독서 문학기행’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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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이날 오전 9시 서울에서 출발한 청각장애인들은 처음 강원도립화목원을 들러 갖가지 식물과 꽃을 감상하며 강원도 내 생태자원에 대해 배웠다. 산림박물관을 찾아서는 산림을 개발하며 살아온 강원도 지역 문화를 공부했다.

본격적인 문학기행을 위해 김유정 문학촌을 찾은 청각장애인들은 평소에는 개방되지 않는다는 김유정 생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문학촌 촌장인 전상국 작가는 특별히 이곳을 개방하면서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이끌어 갔다. 전상국 작가는 “처음에는 으레 찾는 방문객을 맞이하듯 강의했다”고 했지만 “청각장애인들의 독서량이 상당하고 지식도 폭넓어 나중에는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김유정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면서 그의 삶이 굴곡진 고난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 그런 고난을 작품에 담았기 때문에 걸작을 남길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작가와의 만남을 마친 청각장애인들은 김유정 작가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 참가자는 “워낙 유명한 소설가다 보니 <봄봄>이나 <동백꽃>을 읽으면서도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다”며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고 했다. 김유정 작가가 만성적인 늑막염, 치질, 폐결핵 등 갖은 질병을 이기려 글을 썼다는 것에도 흥미를 보이면서 “건강한 지식을 쌓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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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2012년은 ‘독서의 해’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독서의 해를 맞아 지역과 계층, 장애에 관계없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균등한 독서환경을 조성하려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왔다. 올해는 기존의 프로그램들을 다듬어 장애인 독서문화 확산에 기여하려 ‘찾아가는 장애인 독서문화운동’을 펼친다.

장애인의 독서능력을 기르는 교육프로그램 ‘독서를 통해 내 안의 나를 찾다’는 6월부터 9월까지 대구점자도서관, 송암점자도서관 등 10개 지역 장애인도서관에서 열린다. 9월 24일에는 ‘장애인 독서한마당’ 행사가 열려 독서를 통해 자기 계발에 성공한 장애인이 직접 문학, 예술, 사진 등 작품을 발표한다.

‘작가와 함께하는 독서 문학기행’은 특히 다양한 체험, 강연을 통해 독서 경험의 폭을 넓히고 여행 기회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들에게 인기가 있다. 지난 5월 30일에 경기도 양평 황순원문학촌을 찾은 송암점자도서관 소속 시각장애인 80명을 시작으로, 11월까지 시각·청각·지체장애인이 충북 옥천 정지용문학관이나 경남 함양 지리산문학관, 전북 고창 미당시문학관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 김남숙 사무관은 “장애인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일반인과의 지식·정보 격차가 크다”며 “독서를 통해 지식·정보 격차를 줄이고 우리 사회·문화에 대한 이해도 키우는 것이 독서운동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올해 ‘찾아가는 장애인 독서문화운동’이라 이름 붙여 묶었지만 교육프로그램이나 문학기행은 지난해에도 진행되었던 것이다. 문학기행이 작품이 탄생한 배경, 작가의 문학세계를 만든 환경을 찾아 흥미 유발과 동기 부여를 노리는 프로그램이라면, 교육프로그램은 독서를 시작하려는 장애인들에게 좀 더 쉽고 체계적인 독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점자도서관에서 진행한 교육프로그램은 장애인들이 자발적으로 작품집을 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장애인들을 도울 중견·신인작가와 독서도우미가 도서관에 파견됐다. 김소월 시인의 시와 문학세계를 주제로 해 읽는 작품을 늘려 갔다. 그러다 시 읽기에 흥미를 느낀 장애인들이 나서서 시를 쓰고 싶다고 밝혔다. 독서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쓴 시를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표하고, 연말에 작품집으로 발간했다.

8월 
올해 2월에는 국립장애인도서관 설립이 확정되기도 했다. 지식정보 취약계층의 정보접근성 강화를 위한 도서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8월 국립중앙도서관 2층 일부를 리모델링해 국립장애인도서관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2007년 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가 설립돼 장애인 도서관서비스 기준을 정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 왔지만 예산과 인력, 재원이 부족해 독서 문화가 확산되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 장애인이 책을 읽으려면 점자나 녹음 자료, 자막 자료 등 대체자료가 필요한데 이를 제작할 여건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설립되면 대체자료를 만들 전문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장애인들이 직접 도서관을 찾기도 쉬워진다.

김남숙 사무관은 “장애인도서관 설립을 계기로 장애인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교육은 물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글·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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