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가을 추(秋) 저녁 석(夕). 사랑하는 사람과 한가위 보름달을 쳐다보며 가을 저녁을 걸어본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언론에선 올 추석에도 민족 대이동을 한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하겠지. 올 추석엔 이동만 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을 저녁에 함께 걸어봤으면 싶어.
광복 직후부터 1950년대까지, 그러니까 구보 씨가 청소년일 때의 추석은 지금과는 너무 달랐지. 추석날엔 소놀이, 거북놀이, 줄다리기, 활쏘기 같은 여러 가지 민속놀이를 했어. 남자라서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멀찍이서 지켜본 강강술래는 아름다운 단체 춤 같았어. 동네 아주머니들은 추석날 밤에 추석빔으로 곱게 차려입고 둥글게 손을 맞잡고 마을 공터를 돌았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강강술래가 그때까지도 계속된 거지.

▷콩나물시루처럼 초만원을 이룬 추석 귀성열차 안에서 짐짝처럼 선반에 얹혀가는 귀성객들(1968년 10월 5일).
추석빔도 잊을 수 없네. 어머니가 옷을 사주는 건 일 년에 딱 두 번이었는데 설에 한 번, 추석에 한 번이었지. 집안 사정이 어려우면 건너뛸 때도 있었지만 추석엔 늘 새 옷을 사주셨어.
기차역과 터미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의 행렬이 이어진 건 아마 1960년대부터 시작됐을 거야. 해마다 추석 때면 정원의 3배가 넘는 승객들이 타서 열차 바퀴의 스프링이 부러졌다는 신문 기사가 실리기도 했어. 입석표가 있어도 타는 게 불가능했던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들어가 겨우 열차를 타는 일도 허다했어. 탑승한 게 아니라 상자처럼 실려갔다고 보면 돼. 고향, 그게 뭐라고 그렇게 곤혹을 치르면서까지 가야 하느냐고 요즘 젊은이들이 묻는다면 딱히 해줄 말이 없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이 곱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 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나훈아의 '고향역'(1972) 같은 정서를 요즘 젊은이들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겠지. 가고 싶었고, 가야만 하고, 못 가면 눈물 나고, 동구 밖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고, 고향이란 그런 곳이야.
시골에선 전국 각지에서 모인 고향 선후배들이 그동안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밤새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지. 그리고 추석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동네 콩쿠르가 열리는 거야. 마을회관 앞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노래 실력을 뽐내는 빅 이벤트였어. 입상자에게 주는 상품이라고 해봐야 양동이, 세숫대야, 식료품 선물세트 따위였는데, 그 열기만큼은 '나는 가수다'의 출연자들 이상이었지. 1970년대까지 이어지던 추석 콩쿠르는 마을 공동체의 화합 한마당 축제가 아니었나 싶어.

▷한가위를 앞둔 2008년 9월 11일 광주역에서 교통 혼잡을 피해 서울의 가족과 함께 차례를 지내려는 역귀성객들이 서울행 열차에 오르고 있다.
이젠 역귀성 행렬이 대세
휴양지로 떠나는 사람도 급증
1980년대부터는 예매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갖춰지면서 고속버스나 열차표를 파는 임시 예매소가 마련되기도 했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자리 잡기 경쟁을 하는 바람에 추석을 앞두고 아수라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 새치기를 하다 걸려 멱살을 잡히는 건 다반사였고, 암표상도 많아 경찰과 공무원들이 사람들을 통제했어.
시골의 부모님이 자식들 보러 서울로 올라오는 '역(逆)귀성'이 크게 늘어난 것은 1984년 추석을 앞두고부터 시작됐지. 언론은 유난히 그해 추석 무렵 귀성과 귀경의 어려움에 대해 자주 보도했는데, 그래선지 오가며 고생할 자식들을 생각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모들이 그렇게 선택한 거야. 집단적인 자식 배려 현상이었지.
199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핵가족 시대가 정착되면서 추석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 2000년 이후엔 '역귀성' 가족도 더 늘어났지. 자식들의 고생을 배려한 부모님이 자청하기보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역귀성을 권유하는 경우도 많았어.
눈을 감아도 고향역이 서서히 안 떠오르기 시작한 거야. 조상 묘의 벌초와 차례 상차림을 생면부지의 남에게 맡기고 국내외 휴양지로 떠나는 이들도 엄청 많아졌어. 조상님들은 언제나 너그러우셨으니 다 이해해주실 거라고 양해를 구하며, 귀성객이 아닌 관광객 신분으로 가뿐하게 떠나는 거지. 구보 씨는 이런 세태를 탓하거나 서글퍼할 생각은 전혀 없어. 각자 형편대로 해야지. 다들 열심히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떠나라, 열심히 일한 당신!'이란 광고 문구도 있잖아.

▷1960~70년대 대표적인 추석 인기 선물이었던 설탕 세트.
추석 선물도 빼놓을 수 없네. 추석에 주고받는 선물 목록엔 경제상황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1950년대엔 밀가루, 쌀, 계란 같은 농수산물을 주고받았고, 1960년대부터는 아동복, 속옷, 설탕, 라면이 인기 품목이었지. 이전보다 경제 상황이 좋아진 1970년대엔 치약, 식용유, 와이셔츠, 커피 선물세트, 화장품 세트가 대세였고.
1980년대엔 정육 세트, 지갑, 벨트, 스카프, 1990년대엔 꿀이나 인삼 같은 건강식품이 인기를 끌었고 상품권도 보편화됐어. 2000년대 이후엔 통조림 제품과 조미료 세트가 인기를 끌었지만 고급 와인 같은 좀 더 비싼 선물도 많이 팔려나갔다고 해. 그러니까 간략히 요약하면 '밀가루→설탕→치약→정육→꿀·인삼→고급 와인' 순으로 추석 선물의 인기 품목이 변해왔다고 볼 수 있어.
추석 풍경은 변했지만 올 추석에도 사람들은 고향을 찾겠지. 많은 분들이 전국의 주요 역과 터미널에 몰려 어김없이 발 디딜 틈이 없을 거야. 고향에서 햅쌀밥과 송편 맛있게 드시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은 넉넉한 마음을 나누셨으면 해.
촌스럽다며 구보 씨를 면박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할게. 길 막힌다며 서둘러 올라올 생각만 하지 말고, '가을 저녁(秋夕)'의 삽상한 바람 속을 사랑하는 사람과 걸어보기를 바라네. 정말로 오랜만에!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전 한국PR학회장)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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