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2012년은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설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원년이다. 주로 외형적 성장으로 표현되는 증표는 여러 문화예술 분야에서 대내외적으로 고르게 드러났다.
우선 가수 싸이의 활약이 꼽힌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며 최단기간 누적 조회수 기록을 거푸 경신했다. 이전 아이돌 가수들이 이끌던 K팝 한류가 한차원 격상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세계적으로 임팩트는 강했고, 더욱 광범위했다. 미국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다. 한국 대중가요사의 신기원이다.
영화 성적도 대중가요 못지않다. 한국영화 <광해>와 <도둑들>은 1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한국영화 관객 1억명 시대를 여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세계 주요 영화제의 최고 작품상 쾌거는 한국 영화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대중예술에 비해 언론의 관심이 덜한 기초예술 분야는 어떨까?
이 분야의 성장세도 무시할 수 없다. 시장 분위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매년 10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개최하는 ‘서울아트마켓(PAMS)’을 보자. 연극, 무용, 음악, 복합장르 등의 ‘상품’을 사고파는 공연예술 장터에는 올해 2백50명이 넘는 해외 바이어들이 찾았다. 이들은 공연예술 시장에서 ‘한국 프리미엄’을 말하기 시작했다.


마켓을 통한 거래 성사 건수도 급증 추세다. 지난 5년간 누적 거래성사 건수가 6백건 정도다. 서울아트마켓은 수익 창출보다 상호주의 입장에서 ‘문화교류(culture exchange)’가 일차 목적.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세계적인 상품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여성 소리꾼 이자람은 좋은 예다. 이씨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원리를 판소리에 접목한 <억척가> 등으로 국제무대에서 인기가 치솟았다. 유럽 무대에서 호평도 받았다. ‘공연계의 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문화예술 중심 ‘한류’는 엄연히 실재하는 거대 현상이다. 덕분에 문화강국의 서막이 열린 셈이다. 본격 드라마라면 그 다음이 중요하다. 견고한 지속성을 확보하는 일이 과제인데, 그 기반을 공고히 하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첫째로, 문화행정 측면에서 ‘정책 과잉’을 경계해야 한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정부의 문화정책도 쏟아져 나왔다. 그 영향으로 문화예술 지원제도 등이 단단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현상에 대한 대증요법식 정책이 혼란을 일으킬 때가 더러 있다. K팝 전문 공연장 건립 계획 과정에서 보여준 조급증이 그런 예가 아닐까 한다. 문화정책은 1백년은 아니더라도 10년 대계는 되어야 한다.
둘째, 정책 과잉은 자칫 예술 현장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문화강국 영국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지원 원칙을 지키고 있다. 흔히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라 하는데, 국가가 앞장서 문화예술을 지원할 때 유념할 기준이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아무리 국가 지원 예산이 많아지고 기획력, 홍보·마케팅, 국제교류 기술이 발달해도 문화예술 창의성의 근간은 개별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한 현장 종사자들의 몫이다. 이들의 창의성을 제도가 옭아매서는 안 된다. 시장과 현장, 정책 개입 영역을 구분짓는 지혜다.
셋째, 창작 과정에서의 융복합적인 사고와 지원이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최근 관심사도 이것. 문화와 관광 등 서로 다른 분야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테면 공연장이 관광업계와 협력해 관광객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식이다.
하지만 앞으로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런 협력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특히 창작 과정에서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융·복합적인 시도가 중요하다. 긴요한 문화산업화 전략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로버트 윌슨의 무대의상 작업에 참여하는 건 가장 기초 수준의 예일 것이다.

넷째, 문화예술 수출 진흥을 위한 국가적인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핀란드를 참조할 만하다. 무선전화기 ‘노키아’ 신화를 썼던 핀란드는 최근 약 3천억원에 이르는 문화수출 진흥예산을 확보했다.
이 진흥 프로그램에는 교육문화부는 물론 무역산업부, 외무부, 기술혁신지원청, 관광공사 등 ‘문화수출’ 관련 부처들이 함께 참여한다. 한 가지 목표를 위한 부처 간 융·복합 협력인 것이다. 우리도 이런 큰 그림을 그릴 때가 됐다.
최근 한류가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고양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난망한 일인가 자조하던 시절이 엊그제였다. 그런 벽을 일군의 젊은 예술가들이 과감히 깨부수었다. 격세지감이다. 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는 국가적인 어젠다 설정이 절실하다.
글·정재왈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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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