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2003년 12월 11일 서울 강남의 리츠칼튼 호텔. 기자들이 대거 몰려와 홈런 아시아신기록(56개)을 세운 이승엽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 진출, 일본행, 삼성 잔류를 놓고 번민하던 이승엽이 거취를 최종 선언하는 자리였다.
이승엽은 전날 대리인이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와 협상을 벌여 2년간 5억엔의 조건으로 입단에 합의했다. 하지만 삼성 구단의 마지막 뒤집기 시도가 있었다. 삼성은 이승엽에게 무려 1백억원이 넘는 베팅을 했다. 지바 롯데의 조건을 훨씬 웃도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이승엽은 흔들렸고 잔류 결심으로 마음이 쏠렸다. 삼성 구단은 내심 잔류를 자신했다.
그러나 이승엽의 결심은 단 몇 분 만에 바뀌었다. 그것도 호텔 객실에서 기자회견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롯데와의 합의를 깰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롯데행을 선언했다. 팔짱을 끼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삼성 관계자들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눈물을 뿌리며 일본으로 진출한 이승엽은 첫해인 2004 시즌에는 부진했지만 이듬해 30홈런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또한 잔류 예상을 뒤집고 요미우리로 이적해 세상을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2006 시즌에는 개막 전부터 요미우리 71대 4번 타자로 발돋움하더니 41홈런, 1백8타점, 3할2푼3리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 덕분에 스토브리그에서는 4년 30억엔짜리 ‘잭팟’을 터뜨렸다. 실로 이승엽 야구인생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이후 4년 동안 이승엽은 숱한 위기를 겪는다. 왼쪽 무릎 수술과 왼손 엄지손가락 수술 후유증에 따른 부진으로 여러 차례 2군행의 수모를 겪었다. 4번 타자 자리도 내놓았다. 급기야 올해는 일본 진출 후 처음으로 개막을 후보선수로 맞이했다. 대타와 대수비가 임무였고 지난 6월엔 2군으로 내려갔다. 얼마 전 잠깐 1군에 올라오더니 사흘 만에 2군으로 재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면서 점점 요미우리와의 결별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간의 부진 이유를 꼽자면 무엇보다 부상이 컸다. 특히 일본 투수들의 집요한 몸 쪽 승부에 큰 ‘내상’을 입었다. 아울러 거포 알렉스 라미레스와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의 입단은 이승엽을 주변부로 밀려나게 했다.
이승엽을 뒤흔드는 구단 안팎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와타나베 쓰네오 구단 회장이 직접 이승엽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이한 일도 벌어졌다. 요미우리 ‘OB회’ 내에서 이승엽 4번 타자 기용에 불만의 목소리가 많았던 모양이다. 주변에서 끊임없는 관심을 쏟아주고 동기 부여를 해주는 인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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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거취를 놓고 요미우리 구단도 술렁거리고 있다. 이승엽을 비롯해 불필요한 전력을 정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승엽의 연봉은 6억엔이지만 실제로는 9억엔이라는 설이 많다. 4년 동안 수백억원을 투자했는데 부진하자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요미우리 잔류가 어렵다면 향후 거취는 일본 내 타 구단 이적이 가장 현실적이다. 메이저리그 진출은 나이 때문에 쉽지 않고 친정팀 삼성은 국내 복귀에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 팀이 세대교체에 성공해 자리가 없을뿐더러 일본 이적 당시의 아쉬움이 크게 남아 있다.
일본 내 이적도 쉬운 것은 아니다. 몸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값을 1억엔까지 대폭 낮춰야 가능성이 있다. 눈물을 머금고 일본 진출을 선택했던 2003년 겨울을 생각한다면 몸값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장훈 씨가 거론했듯이 이승엽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30홈런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승엽은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대한민국 국민타자라는 자존심이 있다.
글·이선호(OSEN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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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