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제 이름을 붙인 극장이 탄생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극장
현판을 보고 너무 감격했습니다. 감개가 무량합니다.”(백성희)
“배우의 예술은 ‘커튼콜’과 함께 소멸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극장이
생기는 것은 배우로서 최대의 영광이죠. 이 극장이 인재 양성의 산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장민호)
지난
12월 27일 오후 서울역 옆 기무사(옛 보안사) 수송대 부지에 마련된 열린문화공간에서
‘백성희?장민호 극장’ 현판식이 열렸다. 이는 2백60석 소극장으로 배우의 이름을
따서 만든 최초의 국공립극장이다. 열린문화공간에는 ‘백성희?장민호 극장’ 외에도
국립극단, 다목적 스튜디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국 등이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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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백성희?장민호 극장’의 건립은 단순히 연극계만의
일이 아니다. 너무 급격히 변해 그간 소홀했던 전통을 다시금 반추하는 계기이자
우리 사회의 어른과 원로를 조명하고 대우하는 첫발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극장 이름의 앞자리를 차지한 백성희(86)씨는 장민호(87)씨보다 나이는 한
살 연하지만 데뷔 연도로 보면 선배다. 백씨는 1943년 극단 현대극장의 <봉선화>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한동안 현대적이고 지적인 역할 을
해오다가 1964년 <만선>에서 구포댁을 맡아 연기 폭을 넓혔다.
백씨는 1954년 주한미군을 위로 방문한 마릴린 먼로와 한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400편 정도에 출연했다”면서 “창작 작품으로는 김동리의 <무녀도>,
차범석의 <산불>, 노경식의 <달집> 등이 기억에 남는다. 번역극으로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이라고 말했다. 이어 백씨는
“그동안 작품은 가려도 배역은 가리지 않았다. ‘나한테 오기만 해! 넌 내
거야!’라는 심정으로 살았다”고 했다. 황해도 신천이 고향인 장민호씨는 1945년
월남해 조선배우학교에 입학했다. 1947년 성극 <모세>로 주연배우가 됐고,
지금까지 <파우스트> <대수양(大首陽)> <성웅 이순신> 등 230편
정도에 출연했다.
장씨는 “1957년 전국의 내로라하는 배우 52명을 모아서 김동인 원작의 <대수양>이라는
작품을 공연했는데, 내가 주연을 맡았다”고 말했다. 연극 <파우스트>의 파우스트
역으로도 유명한 그는 “깊은 우물에 조약돌을 던졌을 때 ‘펑’하며 울리는 소리,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게 나의 연기론”이라고 했다.![]()
한편
장씨는 백씨에 대해 “아내보다 내 속을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 백씨는
장씨에 대해 “장 선생이 없었다면 외로움에 지쳐 연극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부디 건강해서 오래 무대에 섰으면 좋겠다”라고 한다.
서로를 아끼는 이 두 배우가 위대한 건 과거에 이름을 날렸던 중견배우여서가
아니라, 80대 중반인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현역배우이기 때문이다.
두 배우는 2010년 7월 한국 연극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백성희씨는 1972~74년, 1991~93년 두 번에 걸쳐 국립극단장을 맡았다. 그는
“세계 최연소이자 여성으로 국립극단 단장이 됐다”면서 “1950년 국립극단 창립
때부터 단원으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백씨는 후배 배우들에게 “스타의식을 갖는
것보다 예술가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평생을 걸고하면
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민호씨도 1967~69년, 1980~90년 두 번에 걸쳐 국립극단장을 역임했다.
장씨는 “국립극단장을 할 때는 성우, TV탤런트, 영화 등을 접고 연극에만 전념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후배 배우들에게 “정성을 다해 연극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큰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건강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두 배우의 이름이 아로새겨진 ‘백성희?장민호 극장’은 현판식에 이어
3월 중 정식 오픈한다. 국립극단 공연기획팀 최홍일 PD는“극장 개관과 함께 두 배우가
출연하는 <3월의 눈>이 공연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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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