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올해는 대한민국의 이름을 우리 가슴속에 다시 한 번 아로새기는 특별한 해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 8월 29일의 경술국치(庚戌國恥), 한일강제병합 1백 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서글픈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를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애쓴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름 없이 스러져간 무수한 의병(義兵)들도 이에 포함된다.

의병은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을 막았다. 그들의 의지는 공고했다. 따라서 한말 생겨난 의병도 당연한 애국적 결의의 결과였다.

25년째 한말 의병 연구에 몰두하며 다양한 저서와 논문을 발표해온 이태룡 박사가 올해 경술국치 1백 년을 맞아 의병의 업적과 절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저서 <호남 의병장 전해산>을 펴냈다. 저자는 많은 의병 중에서도 특히 죽음을 불사했던 호남 의병장 전해산(全海山·1878~1910)의 삶에 주목했다.

총 2권인 이 책은 전해산 선생이 의병 투쟁 당시 손수 쓴 <진중일기>와 <한국독립운동사>를 바탕으로 상권을 만들고, 광복 후 친족과 장수향교가 펴낸 <해산창의록>을 번역한 것과 전해산 선생이 의병장에 추대된 경위와 그의 의병투쟁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하권에 수록했다.

본명 기홍(基泓), 전북 임실 출생인 전해산 선생은 나주, 영광 등 전남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의병투쟁을 전개했다. 가난한 유생 집안에서 태어나 학문에 심취한 그였지만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탐독하며 일제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앞장섰다.

그는 해산한 군인과 포수들을 모아 의병부대인 ‘대동창의단(大同倡義團)’을 만들었다. 의병부대는 한국 군대의 전통적 편제를 갖추고 일원적인 지휘계통으로 구성됐다. 이후 심남일, 김영엽, 오성술 등과 호남 의병의 연합조직을 결성했다. 전해산 선생은 1908년 겨울 호남동의단(湖南同義團)을 탄생시켰고 대장으로 추대됐다. 당시 전라도에서 활동하던 11개 의병부대가 참여한 큰 규모의 부대였다.
 

하지만 한말 의병활동은 쉽지 않은 행보였다. 저자는 “과거엔 무기 수준이 비슷했기에 군인과 민간인 정도의 싸움에 비할 수 있었지만 창이나 칼, 화승총을 든 한말 의병이 6연발 총과 기관총을 휴대하고 기마병까지 동원된 일본군을 상대로 승부를 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며 “일본군의 상대가 되지 못할 줄 알면서도, 일본군을 치러 나가면 죽을 줄 알면서도 기꺼이 한 목숨 바쳐 일어섰던 그들이 한말 의병”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해산 선생은 1909년 4월 전투에서 잇따라 패한 뒤 재기 불능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지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한일강제병합을 차마 막지 못한 채 1910년 8월 23일, 대구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석영 한말 호남의병장 추모위원회 위원장은 “의병들은 나라를 잃으면 민족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를 예견한 선각자들이었다”며 “경술국치 1백 년을 맞기까지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의병들의 공적을 하루빨리 찾아 민족의 이름으로 기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김민지 기자


이태룡 엮음 / 삼조출판사·상하권 각 1만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