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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책 읽어주는 남자 <삶을 바꾼 만남>




사람은 본디 외로운 존재인 듯 싶다. 누구나 만남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스마트 시대가 열리면서 만남의 기회는 그야말로 무궁하다.

종으로 횡으로 엮이면서 접속을 통한 만남의 난장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 숱한 만남 속에서 자신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진정한 만남이 있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서로 다른 것이 충돌하여 빛나는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만남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만남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여기 가슴뭉클한 만남의 진경을 오롯이 기록한 책이 있다. 제목부터 이 만남이 범상치 아니했음을 보여주니 <삶을 바꾼 만남>이다. 정조가 죽은 다음 다산 정약용이 당한 수난과 고초는 널리 알려졌다. 강진으로 유배되었고, 너무 죄가 큰 이가 귀양온지라 마을 사람들은 그와 인연 맺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죽했으면 주막집에 거처를 정했겠는가. 시간이 흘러 마을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다산은 서당을 차렸다. 아전 정도 사회계층의 아들들이 주를 이루었다.

다산은 대단히 훌륭한 교사였다. 이들을 단련하여 지적으로 성숙하도록 이끌었고, 그들과 함께 엄청난 양의 책을 편찬하거나 저술했다. 이때 인연 맺은 제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이가 황상이다.

이 책은 다산과 황상의 만남을 감동 깊게 그려내고 있다.

황상은 열다섯에 다산을 만났다. 다산이 보기에 황상은 시짓기에 재주가 있었다. 될성부른 나무였던 셈. 하나, 황상은 자신이 없었다. 그때 다산이 그에게 말해주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 데 있다. 둘째,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이 들뜨는 데 있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다.”

놀랍지 않은가. 어림잡아 2백년 전에 한 말이 어찌 이리 우리의 가슴을 파헤칠까. 이 말에 이어 다산은 ‘삼근계’를 황상에게 말해준다.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틔우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떻게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어야 한다.”

황상은 평생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았다. 너무 우직하여 다산이 걱정할 정도였다. 유배가 풀려 다산이 올라가자 제자들은 기대가 부풀었다. 스승이 자신들의 뒷배를 봐주리라 여겼다. 그러나 다산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었다. 폐족의 위기를 벗어났을 뿐이다. 그러자 스승과 등을 돌린 이마저 나타났다. 다산의 학문세례로 엄청난 성장을 이룬 수제자 이학래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스승의 만류에도 과거에 합격하여 신분상승을 이루려 했다. 스승이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않자 추사 김정희의 문하로 들어갔다.


하지만 황상의 길은 달랐다. 초야에 묻혀 농사지으며 시를 공부하고 지었다. 속세의 영광을 갈구하지 않았다. 스승에게 의탁하여 한자리 하려 나부대지도 않았다. 너무 연락이 없어 안달한 이는 오히려 다산이었다. 결혼 60주년을 맞이한 스승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전언을 듣고서야 상경했다. 18년 만의 해후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은 정말 삶을 바꾼 만남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우리에게 이런 만남이 있었나? 진정한 만남을 끝없이 갈구하나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공허함뿐인 적이 많다. 만남이로되, 그것이 삶을 바꾸는 만남이어야 진정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황상은 말년에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문사들에게 높이 평가받는다. 다산의 맏아들인 정학연과는 청년 시절부터 교류가 있었다.

추사 김정희와 그 형제들뿐 아니라 영의정을 지낸 권돈인에게 인정받는다. 아전의 자식은 당대 최고의 시인이 된다.

애써왔으나 아직 성취가 없다 하여 조바심을 내는 이들은 황상을 기억할 일이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며 더 부지런하면 끝내 못 이룰 것이 없는 법이다. 책상머리에 삼근계를 붙여놓을 일이다.

글·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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