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대한제국은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고 칭제건원을 하면서 성립된 황제 국가였다. 비록 13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존속했지만 이 기간은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매우 긴박한 시기였다. 준비가 채 되기 전에 밀어닥친 외래문물을 소화하기 급급했고 국권 피탈을 막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야만 했다. 애국지사와 친일세력 간의 치열한 갈등이 빚어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영화는 대한제국기 황실의 친위대로 육군 참영이라는 고위직에 있었던 주인공 홍진호(황정민 분)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남의 불륜사나 파헤치는 삼류 탐정노릇을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1904년 일제는 ‘군사경찰훈령’을 통해 우리나라의 치안권을 피탈했다. 1907년 즈음 전직 육군참영이 거리의 탐정이 된 이유는 아마도 이 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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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홍진호의 부하였던 오영달(오달수 분)은 출세에 혈안이 되어 일제가 관리하는 경무국의 순사부장으로 변신, 주인공 홍진호와 갈등을 빚는다.
나라의 위기 앞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유일한 목표는 조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가는 것. 미국으로 가는 배삯을 마련하기 위해 돈이 된다면 남의 불륜사를 파헤치고 거기에서 얻은 자극적 사진을 신문사에 파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던 홍진호가 우연히 살인누명을 뒤집어쓸 위기에 처한 의생 광수를 만나고, 장안의 화제가 된 살인사건에 뛰어들면서 비로소 진지하게 탐정 일에 흥미를 느끼고 몰두하게 된다. 여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양반가의 아씨마님 박순덕(엄지원 분)이 가세하면서 영화는 점점 재미를 더해 간다.
박순덕은 분명 머리에 쪽을 지고 나와 결혼한 여인임을 나타내지만, 남편은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 홍진호가 친위대 참영이었을 때 호위를 받은 인연으로 홍진호를 도와주는데 친위대의 호위를 받을 정도면 매우 중요한 가문의 여식이거나 황실과 관련이 있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폐쇄된 방직 공장에 자기 실험실을 꾸리고 갖가지 발명품을 만들 정도의 재력이 있으려면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권세를 가져야 했다. 영화 말미에 박순덕과 홍진호가 만날 날짜를 신문광고로 정하는 것을 이용해 고종이 나타난 것을 보면 박순덕이 황실 관계 인물임을 확실히 한 듯한데 더 이상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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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07년도의 한성 거리를 다소 현대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영화에 나오듯이 1907년 당시에도 분명 전차는 있었으나, 건물의 생김새나 간판이 즐비한 종로거리의 풍경, 사람들의 옷차림 등은 외래 문물이 많이 정착한 1930~1940년대의 모습 같다. 탐정의 옷차림도 1907년의 옷차림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앞서간 느낌이 든다.
살인사건은 서커스단을 둘러싸고 일어나는데, 사실 이 서커스단이란 설정도 1907년과는 맞지 않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로야루-사카스단(로열서커스단)의 단장(윤제문 분)은 억관이란 이름을 가진 한국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한국 사람이 단장인 서커스단은 1925년에 만들어진 동춘서커스단이 최초다. 서커스란 단어도 이 시기에는 쓰지 않았다. 앞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서도 곡예단에 서커스란 이름을 붙인 것은 1913년 이후라고 한다.
서커스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있어 왔고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원형무대의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오늘날과 같이 동물과 사람이 기예를 펼치고 마술과 연희 등을 동시에 공연하는 개념의 서커스는 18세기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처음에 말을 타고 벌이는 여러 가지 기예를 보여 주기 위해 무대를 원형으로 만들면서 서커스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데 곡마단이라고도 부르는 것을 보면 초창기에는 말이 하는 기예가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서구의 서커스 개념이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남사당패 등이 이미 외줄타기 등 여러 가지 기예를 구사하였기 때문에 서커스의 정착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 인기도 상당했다.
실제로 1925년 만들어진 동춘서커스단은 광복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단원이 2백50여 명에 이르렀다.
이 동춘서커스단을 통해 많은 연예인들이 배출되었는데, 영화배우 허장강, 코미디언 서영춘을 비롯 배삼룡, 백금녀, 남철, 남성남, 장항선, 가수 정훈희 등이 모두 동춘서커스단을 거쳐 갔다고 한다.![]()
영화에서 서커스단은 다소 시대와는 맞지 않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특히 서커스 단원들이 일본풍의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는 반면, 착취당하는 가련한 두 소녀는 베로 된 남루한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의 대비는 대한제국 시절 돈과 출세를 위해 무작정 왜색을 좇아간 사람들과 거기에 희생당한 가난한 우리 민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다.
화려하고 몽환적인 공연 뒤에 추악한 비밀을 감추고 있는 서커스단과 이 서커스단을 이용해서 용서받지 못할 욕망을 채우는 자들, 그리고 이들의 추악한 비밀을 파헤치다가 자신의 꿈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탐정단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다소 헐거운 추리구조를 덮고 갈 만큼 상당히 재미있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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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