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근대 골프스윙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전설적 골퍼 벤 호건(1912~1997)은 지독한 사람이었다. 그는 1백개의 샷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1백개를 쳤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습하던 그는 호텔방에서 퍼팅이 빗나가도 ‘처음부터 다시’였다. 그러다 한숨도 못 자고 경기장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엄청난 노력과 훈련만이 제대로 된 스윙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던 그는 “진흙 속에서 (진정한) 스윙을 캐내라(digging it out of the dirt)”는 명언도 남겼다.
이런 벤 호건의 이야기를 미국프로골프투어(PGA) 데뷔 8년 만에 2백11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나상욱(28)이 남몰래 간직했던 비결을 털어놓듯 기자에게 속삭였다.
주니어 시절 각종 아마추어 대회에서 1백승 넘게 이뤘던 ‘골프 신동’이 PGA투어에서도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기까지는 간단치 않은 시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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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서머린TPC(파71·7천2백23야드)에서 열린 미국 PGA 투어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 4라운드. 이 대회는 PGA 투어 랭킹 중·하위권 선수들이 주로 출전하는 가을 시리즈 첫 대회였다. 닉 와트니(미국)와 1타 차 접전을 벌이던 나상욱은 17번홀(파3)에서 13미터짜리 버디 퍼트를 성공하며, 최종 합계 23언더파 2백61타를 기록해 와트니(21언더파)를 2타 차로 제쳤다.
올 시즌 라운드당 퍼트 수 27.7개로 PGA 투어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상욱의 퍼팅 능력이 결정적 순간 빛을 발한 것이다.
나상욱은 그간 2백11개 대회에 도전해 2위에 3번, 3위에 5번 오르는 등 꾸준히 성적을 올렸지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번 우승 전까지 나상욱은 우승 없이 통산 상금 1천만 달러를 돌파한 선수 3명 중 1명이었다.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난 나상욱은 여덟살 때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가 이듬해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주니어 시절 나상욱은 미국 최고의 선수로 손꼽혔다.
1996년 열세살 나이로 US주니어챔피언십에 출전해 최연소 출전기록을 세웠고, 1999·2000년에는 타이거 우즈가 우승(1991년)했던 LA시티챔피언십 2연패를 달성했다. 고교 1학년이던 2000년 나비스코 주니어챔피언십, 핑피닉스 챔피언십, 스콧 로버트슨 챔피언십, 오렌지볼 국제챔피언십에서 모조리 우승하며 미국 주니어 무대를 평정했다. 2000·2001년 2년 연속 미국 주니어 랭킹 1위에 올랐다.
2001년 나상욱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18세 나이에 프로로 전향했다. 2002년 아시아프로골프투어 볼보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신인왕을 거머쥔 그는 다음해 퀄리파잉스쿨에 합격해 PGA 투어 최연소(21세) 멤버가 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나상욱은 2004년 투어 데뷔 첫해 시즌 상금 90만 달러로 간신히 투어 카드를 확보했다. 스코어 오기로 실격을 당하기도 했고 체력조절 실패로 경기를 중도 포기한 적도 있었다. 2006년에는 시즌 초반 손가락이 차 문에 끼이는 부상을 당했다. 뼈에 금이 가 대회 도중에 기권하고 다섯달 넘게 쉬었다.
그동안 준우승을 세 번 하는 등 될듯 될듯 이뤄지지 않던 우승이 마침내 이뤄지던 날 특별한 일이 있었다. 어머니 정혜원(54)씨가 4라운드가 있던 날 새벽 꿈을 꿨다. “어머니가 누가 좋은 걸 저에게 주려고 하길래 ‘빨리 받아라, 빨리 받아라’ 하고 외치다 잠에서 깼다며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몇 년 전부터 2위로 대회를 마치는 악몽에 자주 시달리던 나상욱은 어머니의 길몽이 각별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나상욱은 어릴적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한국어가 능숙하다. “부모님이 철저하게 우리말을 가르치셨어요. 한문도 배우고 사자성어도 많이 외웠죠.”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순간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을 아버지가 자주 해 주셨다”고 했다.
아버지 나용훈(58)씨는 지난해 백혈병 진단을 받고 제주도에서 지내고 있다.
나상욱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며 “지금은 완치 단계에 접어들 정도로 건강이 좋아지셔서 기쁘다”고 했다.
나상욱이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을 때 대회 우승자들은 필 미켈슨(미국), 제프 오길비(호주), 어니 엘스(남아공) 등 당대의 고수들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상욱은 “골프는 스윙이 아니라 심장과 머리로 하는 경기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챔피언이 될 만한 배짱과 전략을 갖추지 못하면 우승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올 여름에는 어린 시절 함께 골프를 배웠던 형 나상현(31·경희대 골프경영학과 객원교수)으로부터 ‘백스윙을 좀 더 업라이트하게 하라’는 코치를 받기도 했다. 나상욱은 지난해 경희대에 입학해 형과 사제관계가 됐다.![]()
나상욱에게 우승 못지않게 힘들었던 일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듯한 정체성 혼란이었다고 한다.
그는 PGA 투어 대회 도중 다른 선수를 응원하던 갤러리가 “저 코리안, 스윙하다가 바람에 날려 연못에나 빠져 버려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흥분한 적이 있었다. 이 같은 ‘차별’을 겪으면서 그는 자신의 응원군을 한국에서 찾았지만 인터넷 사이트의 한국 기사 댓글에는 ‘매너도 없는 재미동포’, ‘우승을 할 수 있긴 한 거야’ 등 야유성 글이 많았다.
그는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면 제가 한국 골퍼라는 답이 나온다”며 “한국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더 많은 우승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우승하던 날 최경주와 양용은·김경태·강성훈·김비오 등 ‘코리안 브러더스’의 축하 메시지가 그의 휴대폰으로 쏟아졌다.
PGA 투어 한국 골프의 선구자 역할을 한 최경주, 아시아 첫 메이저 챔피언인 양용은은 그가 존경하는 ‘형님’들이다. 새로운 도약의 첫 걸음을 내디딘 나상욱이 PGA투어에서도 주니어 시절처럼 활약하길 기대해본다.
글·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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