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책 읽어주는 남자 <철수사용설명서>




제목부터가 입가에 미소를 짓게한다. <철수사용설명서>. 작가가 주인공 이름을 철수로 쓰기로 했다면, 이는 이미 그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바다. 무엇일까? 어디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렷다.

그렇다. 이 소설에 나오는 철수는 오늘 우리 시대에 너무 자주 만나는 대표적인 ‘찌질이’다. 대학 나왔으나 취직 못하고 있는 백수다. 왜 하고 싶지

않겠는가. 부단히 도전했으나 판판이 깨졌다. 이게 부족하면 향상하기 위해 노력했고, 저게 모자라면 메워 보려 애썼다. 물론 못하는 게 더 많다. 아예 안되는 것이 있으니, 영어실력 암만 해도 안 늘고 술도 제대로 못 마신다. 이러니 뭐가 될 게 있겠는가.

그러니 이 소설은 찌질이의 일대기로 마냥 나간다. 어렸을 적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피아노 레슨에 들어갔으나 학원 원장이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때부터 잘하는 게 없는 인간으로 찍혔다. 좀 커서 더는 여탕 들어갈 수 없게 돼 아버지랑 남탕 갔을 때 들을 말은 고작 “어째 넌 등도 하나 제대로 못 미냐?”였다. 남은 것은 공부였다. 그걸 일찌감치 포기할 부모는 없다. 그럼에도 결국 더는 크게 기대할 바가 없다는 최종판단을 내리게 하고 말았다.

이 화상, 연애는 잘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잘돼서 운우지정을 나누게 되면 꼭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부끄럽거나 남사스러우면 몸에 열이 확 오르는데, 이런 일이 꼭 그런 일이 있으려면 재발했다.

열 식히려 몸에 소주 발랐다 차이고, 해열제 먹었다가 비아그라 먹었는데도 고작 그 크기밖에 안되냐고 타박 들었다.

이런 철수를 사용해 본 이들이 두루 사용후기를 달아 놓았다.

이 소설, 이런 재미로 읽는 맛이 더하다. 정말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좀 자세한 사용기를 보는 듯하다. 이 대목에서 작가 전석순의 기발함을 높이 추켜세워야겠다. 일찌감치 88만원 세대로 낙인 찍히면서 삶의 희망을 열어 가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초상을 기발하고 발랄하되, 알고 보면 우울하게 그려냈으니 말이다. 하여튼 철수를 사용해 본 여성이 올린 후기 일부를 한번 볼라치면 다음 같다.

“딱히 어떤 기능을 바라고 산 게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그만이었죠. 어린 남자친구까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안은 거짓말로 다 채워 줄 수 있었어요. 학벌, 나이, 연봉, 재산까지 모두 다. 세탁기나 냉장고 사용하면서 느낀 걸 거짓말로 떠 벌리면 텅 빈 안을 다 채워 줄 수 있어요. 모두 속였으니까 전 아주 만족해요. 사실 겉모양이 너무 화려해도 의심을 받아요. 그런 면에서 저에겐 철수가 딱 맞았죠. 기회가 된다면 또 써 보고 싶어요.”

근데 주의할 점이 있다. 이 소설 제목이 철수 사용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사용설명서다. 사용후기는 써 본 사람이 쓰는 글이다. 그렇다면 사용설명서는? 그 기기의 작동 가능성에 대해 자세히 써 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필요와 욕심에 맞춰 사람을 뽑거나 물건을 산다.


그런데 중요한 일은 그 사람이나 그 기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 두는 것이다. 써 놓고 보니 그런 능력이나 기능이 없다고 한다면 잘못되었다. 그 사람이나 그 기기가 어떤 실현가능한 잠재성이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아야 한다. 작가는 바로 우리 사회가 이 점을 놓치고 있다고 통렬하게 비난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을 기기처럼 다루는 풍으로 소설을 써 나간 것도 이를 풍자하기 위한 문학장치인 셈이다. 찌질한 철수, 한마디하는데, 뭇 사람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철수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사용설명서를 건네주고 싶었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은 철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 사용한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고 일러 주고 싶었다. 그러면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철수에게 부족한 것 하나를 장착해주는 것만으로도 불만은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글·이권우 (도서평론가) 

<철수사용설명서>의 전석순 작가
1983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전의자>가 당선돼 등단했다. 2011년 장편소설 <철수사용설명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