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 성북동 길상사 건너편에 ‘효재(效齋)’란 이름을 내건 한옥이 있다. 담쟁이 넝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사랑채로 연결된다. 그 안에서 여름 햇살을 머금은 마당을 바라보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이 절로 떠오른다. 올망졸망 핀 봉숭아꽃, 파릇파릇한 채소, 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날아다니는 새들까지. 서울 하늘 아래 숨 쉬는 작은 생명들이 살갑게 반긴다. 그래서일까. 한복 디자이너로 20여 년간 바쁜 삶을 살면서도 친환경 살림을 꾸려온 이효재(52) 씨 역시 손길이 따스하다.
이 씨는 처음 본 사람을 오래 만난 벗처럼 대한다. 자연스레 말을 건네고 차를 내온다. 마당에 있는 넝쿨 잎을 차받침으로 대신해 자연의 싱그러움을 전한다. 소소한 이야기까지 나누다 보면 이 씨의 무던하고 소박한 삶의 태도에 반한다. 그는 오늘 하루를 ‘다시 만날 수 없는 보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갑작스럽게 닥칠 수도 있는 ‘죽음’을 인지하며 살기에 매 순간의 삶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기 때문이다.
신문도 읽지 않고 TV도 보지 않는 그는 짬이 날 때마다 책을 펼쳐든다. 그중에서도 그가 관심 갖는 것은 우리 옛것을 알리는 책들이다. 최근 선조들의 과거를 살피면서 그의 인생 화두인 ‘죽음’과 관련한 <한국의 상례(喪禮)>(2010년)를 즐겨 읽고 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요. 태어나서 행복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다가 죽는 것처럼 떳떳하고 평화로운 죽음이 없지요. 잘 익은 열매가 봄에 싹을 틔우듯, 행복하게 산 사람은 죽은 후에도 평안한 영혼을 맞이할 수 있어요.”
고전문학을 전공한 양승이 씨가 지은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상례에 주목한다. 선조들의 상례 역사와 과정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삶과 죽음을 총체적이고도 다양하게 인식하게 해준다. 조상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예법을 살피다 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오롯이 관조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저승에서도 이승의 삶이 이어진다고 여겨 순장하는 풍습을 가졌고, 신라시대에는 숭불숭유 정책 덕분에 유교식 매장과 불교식 다비 방식이 함께 사용됐죠. 유교사상을 정치철학으로 했던 조선시대엔 3년상이 본격화됐어요. 인간 존재 밑바탕에 있는 죽음을 알면 그 위에 세워진 정치, 도덕, 사회, 문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
이 씨는 혼수 한복을 주로 짓지만 상복도 짓는다. 하지만 상복을 만들 땐 철칙이 있다. 들어간 비용만큼만 받고 제공한다는 것이다. 망자(亡者)를 위한 예의라 여겨서다. 죽음을 존중하는 그의 삶의 자세가 여기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 씨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깨닫길 바란다”고 말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매 순간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복잡한 인생사에 얽매이지 않고 삶을 여유롭게 살 수도 있고요.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자연과 어울려 사는 삶이야말로 죽음을 무탈하게 맞이하는 ‘잘 살고 잘 죽는 법’이라고 생각해요.”
글·김민지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한국의 상례> 양승이 지음 / 한길사 펴냄·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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