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영웅은 타고나거나 운명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게 통념이었다면 정반대의 가설, 즉 영웅은 노력해 의지로 만들어진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전시(戰時)에 특히 국가가 필요에 의해 영웅을 급조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영웅을 사회주의권에서는 노력영웅·노동영웅·인민영웅 등으로 부르고 자유주의권에서는 “애국영웅”이라고 부른다.
물론 모든 애국영웅이 국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을 국가에서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시에는 전공(戰功)으로 승진도 빨리된다. 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경우는 국가가 영웅을 억지로 만든다는 관점이다. 말하자면 프로파간다(정치 지도자·정당 등에 대한 허위·과장된 선전). 선동을 위해 일방적인 여론작업을 하는 차원에서 영웅이 탄생한 경우다.
미국의 슈퍼 액션 히어로들은 대부분 만화를 통해 등장하는데 그중 미국의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대표적인 영웅상이 바로 ‘캡틴아메리카(Captain America)’다. 캡틴 아메리카 만화 시리즈 중 첫번째인 <퍼스트 어벤져>를 보면 캡틴은 1940년대 2차 대전 당시 태어나 독일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며 미국을 승리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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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 스미스는 본래부터 영웅은 아니었다. 그는 애국심이 열렬한 청년이었으나 신체조건이 왜소하고 근육이 빈약한 약골이어서 모병검사에서 항상 떨어졌다. 미국은 그런 그를 영웅골격으로 재탄생시킨다. 이 부분은 만화적인 설정으로 <울버린 : 엑스맨의 탄생> 같은 영화에서 이미 보여 준 것인데 독일에서 넘어온 박사에 의해 인조인간이 급조된다. 이 설정의 원조는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볼 수 있다.
실험실에서 태어난 인조인간 슈퍼맨은 더 이상 인간 스미스가 아니라 슈퍼 히어로이다. 미국 정부는 그를 모델로 하여 전시 프로파간다를 만든다. 이때 붙여진 이름이 캡틴 아메리카다. 슈퍼맨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애국주의를 국민들에게 주입시키는 대목이다.
영화적 관점은 그러한 ‘애국주의 만들기’를 일방적으로 찬양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풍자적으로 보여 주면서 정부는 항상 정치적으로 민간인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영웅에는 반드시 숙적이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는 레드 스컬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역사를 초월해 있다. 히틀러의 부하지만 히틀러마저도 부정하고 전 세계를 자기 세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미디어 속에서 미국의 반독 감정은 이미 청산됐다.
미국이 더 이상 독일을 혐오하는 것은 글로벌한 멤버로서 온당치 않은 처사다. 역사적으로 이미 판정이 난 인물들에 대한 비판만이 유효할 뿐이다. 히틀러, 히믈러, 괴벨스 등은 풍자의 대상이 되지만 독일군 전체에 대한 무자비한 모독은 이제 거의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도 미군이 잔인하게 해치우는 대상은 독일군이 아니라 히틀러에서 이탈한 레드 스컬의 부대들, 소위 악마의 잔당들이다. 그들의 구호는 “하일, 히드라!”. “하일 히틀러!”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혼동을 한다. 겉으로는 아니지만 미국 관객들은 마음속으로 독일군에 대한 억압된 감정을 발산한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일 감정을 드러내기 어렵지만 영화 속에서 우회적으로 교묘하게 보여 준다면 한국 관객들이 얼마나 즐거워할 것인가. 애국주의 영웅영화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국민적 감정을 숙적에게 쏟아붓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
글·정재형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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