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물론 어떤 작품은 제작비가 많이 든다. 가령 데미언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는 작품은 8천6백1개의 다이아몬드를 해골에 붙인 작품인데, 제작비가 무려 2백27억원이나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작품이 무려 9백40억원에 판매된 이유에 대해서는 딱 떨어지게 설명하기 어렵다. 시간당 노동력이 집중적으로 많이 들었을 거라고 말하면 믿어 줄까?
누구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몸을 써야하는 일도 있고, 가만히 앉아 머리로 생각을 짜내야 하는 일도 있는데, 두 종류의 일 모두 노력과 시간을 바쳐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능력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진다. 그럼, 미술가의 작업은 어떻게 값어치가 매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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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샘 프란시스가 그린 작품을 보자(그림 1). 푸른 물감을 큰 붓에 듬뿍 묻혀 쓱쓱 휘두르고, 그 옆으로 노란색 물감으로 짧게 휙휙 그었다. 일부러 물감을 흩뿌린 흔적도 눈에 띈다. 그림을 끝내는 데 시간이 얼마나 들었을까? 글쎄,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누가 보아도 정성을 많이 기울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꿈틀꿈틀하면서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힘찬 움직임이 느껴져서 사람들은 이 그림을 좋아하나보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호탕한 자유로움이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화가에게 “제발 좀 성의껏 꼼꼼하게 색칠해 주세요” 하고 말한다면 어이없는 부탁이 되고 만다.
이번에는 윤향란의 작품 <산책>(그림 2)을 보자. 초록색 선들이 종이 위를 가로로, 세로로, 또 어슷하게 오갔을 뿐, 그게 전부이다.
어느 날 화가는 날씨가 좋아서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나보다. 그래서 준비도 않고 바로 길을 나선다.
어디를 가야 한다는 부담도 없이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다가 작업실로 돌아온 화가는 눈을 감고 산책길을 떠올려 본다. 긴장감 없이 느슨한 마음, 둥실둥실 가벼운 발걸음, 바람에 실린 싱그러운 풀잎 냄새…. 그래서 초록색을 집어 들고 이런 선을 그었을 것이다.
만일 빽빽하게 색칠했다면 그날의 기분을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조각가 정현의 작품(그림 3)은 매끈한 철판 위에 뾰족한 칼로 긁어 효과를 내었다. 도구를 꽉 움켜 쥔 손아귀의 강한 힘이 느껴지는 가운데, 쇠와 쇠끼리 부딪치면서 소름 돋는 소리가 비명처럼 새어나온다. 칼이 지나간 자리에는 살을 베인 것 같은 쓰라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자. 도대체 미술가의 작업은 어떻게 값어치가 매겨질까. 1877년에 영국에서 비평가 존 러스킨과 제임스 휘슬러라는 화가 사이에 재판이 벌어졌다. 러스킨은 인간의 노동과 정성이 깃들어야 좋은 예술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니 몇 번의 붓질로 단번에 완성한 휘슬러의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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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킨은 “이 잘난 체하는 양반이 물감을 통째로 내던져 그린 후 뻔뻔스럽게 돈을 그렇게 비싸게 받을 줄은 몰랐다”는 내용의 글을 써서 신문에 실었다. 불쾌한 휘슬러는 러스킨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결과는 휘슬러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미술가의 획에는 그것만의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판결이 난 셈이다. 데미언 허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명성이다. 유명하고자 하는 욕망이 예술에서는 아주 근본적인 생존본능이다.”
가격을 올리는 것은 미술가의 노동이 아니라 명성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유명해지기까지 미술가들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한 줄을 긋는 데 40년이 걸렸소”라는 피카소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글ㆍ이주은 (성신여대 미술교육학과 교수)
문의·학고재갤러리 www.hakgojae.com ☎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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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