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요즘 김승회(48·사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섬처럼 따로
노는 한국의 주택 문화에 반기를 드는 의미 있는 건축 실험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1995년 ‘일산주택’을 시작으로 다세대 주택의 대안을 모색한 ‘방배동 돌체하우스’, 가볍고 에너지가 적게 드는 ‘과천주택’, 재벌가 고급주택 등을 통해 ‘집의 전형(典型)’을 모색해 온 건축가다.
이번 실험 무대는 공동 주거의 대안을 위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계획한 판교 신도시 단독주택지의 11블록 지역이다. 총 80여채의 주택이 들어설 예정인 이 지역의 코디네이터 건축가를 맡아 외형적으로 조화로운 동네를 만들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일부 집은 직접 설계했다. 그의 ‘판교 실험’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 ‘윤교수댁’을 김 교수와 함께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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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블록 입구 코너에 있는 2층 집 ‘윤교수댁’의 첫인상은 따뜻함이다.
규모(대지 2백71평방미터, 연면적 2백87평방미터)에 비해 건물 외관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같은 소재로 마감해 덩어리 느낌을 주는 대신 외벽을 분절해 목재·아연판·노출콘크리트를 적절히 안배했기 때문이다. 1층 거실은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외부와 연결되고 2층은 작은 창이 나 있어 한 건물이지만 1, 2층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김승회 교수는 “이 지역 건축주들과 만나 만든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른 표본 같은 집”이라 소개했다. 2008년 판교 단독주택지에 필지를 분양받은 건축주들이 자발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자신들이 살 마을을 통일성 있게 가꿀 목적으로 블록(총 14블록)별로 담당 건축가를 정했다. 이 중 11블록 주민들이 선택한 건축가가 김 교수였다.
그를 적극 추천한 사람이 바로 윤교수댁의 건축주 윤구영(51·홍익대 교수)·이금순(48·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씨 부부였다. 부부는 “건축에 관심이 많은 두 딸과 함께 건축 전시를 돌아다니다 김 교수의 작품을 접했고, 블록 담당 건축가 얘기가 나왔을 때 자연스레 그를 떠올렸다”고 했다.
주민들의 제안에 김 교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자기 집 내부만 관심 있는 우리의 건축 환경에서 이웃들이 의기투합해 자신의 마을 풍경을 통일화시켜 달라고 제안해 온 것이었다. ‘집=집+집’(여러 집이 모여 집합적인 집의 풍경을 이룬다는 뜻)이라는 내 신념하고도 맞아 기꺼이 임하게 됐다.”
건축주들과 만든 가이드라인은 2층 높이인 6미터 정도로 고도를 맞추고 외벽 소재는 콘크리트·목재·아연을 주로 사용해 일관성을 주자는 것 등이었다. 자기 집만 튀려고 더 높이, 더 화려하게 하는 대신 이웃을 위해 배려하고 절제하는 편을 선택했다.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주택이 이 지침을 따랐다.
김 교수는 자신이 직접 설계를 맡은 집에선 구체적으로 두 가지 목표를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웃과의 공간 속에서 예의를 지키는 집’, ‘생활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자아실현의 공간으로서의 집’이었다. 윤교수댁은 이 두 지점이 맞닿은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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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이웃집과 눈높이를 맞추고, 집 옆면과 뒷면에는 창을 거의 내지 않아 이웃의 사생활 침해를 막았다. 그림을 좋아하는 부인을 위해 실내에 갤러리처럼 다양한 공간과 형태의 흰 벽을 만들고, 열린 공간을 즐기고 싶어하는 남편을 위해 1층 거실에 통유리창이 들어갔다. 박공지붕 형태를 그대로 남긴 2층 천장은 가족들에게 ‘진짜 집’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장치다.
김 교수는 “아파트가 기성복이라면 주택은 주인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맞춤복”이라며 “결국 집은 주인을 닮게 된다”고 했다.
건축주는 ‘이웃집과 함께 하는 건축’에 동참한 자신들의 선택에 자부심을 느꼈다. “옆집과 집 바깥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됐다”는 것이었다. 이웃과 함께 나대지에 꽃도 심고 동네의 녹화를 고민하게 됐다. 서로 집으로 초대하는 ‘오픈하우스’도 하면서 아파트 살 때는 잊고 살았던 이웃사촌을 만들고 있다. 집들이 ‘배려하는 건축’을 통해 이기심을 버리자 그 틈으로 사라졌던 이웃의 정이 파고들었다.
글ㆍ김미리 (조선일보 대중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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