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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1942년 병원 배경의 공포영화 <기담>




이야기는 1979년 의대 노교수인 정남이 젊은 시절 수련의를 했던 안생병원이 헐린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시작된다. 일제 식민지의 폭압적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던 1942년에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던 안생병원 수련의 시절 4일간의 회고가 영화의 주요한 내용이다. 배경이 된 안생병원은 실존했던 병원은 아니지만 당시 최고의 서양식 병원이라고 상정한 것을 볼 때 서울대학교병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교 부속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이미지를 혼합하여 가상의 병원 공간을 만든 것 같다.




현재 경성제국대학교 병원 건물은 헐리지 않고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 병원 내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만 서울역 앞에 1904년경 지어졌던 세브란스 병원 건물은 현대로 넘어오면서 헐렸다. 영화 속 안생병원의 여의사 인영(김보경 분)이 수련의 정남(진구 분) 등 의대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14·15기 후배들이 만만치 않다’라는 대사가 나오는 것을 볼 때 경성제국대학교 부속병원이 좀 더 직접적인 모델인 듯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42년경이면 1926년에 처음 만들어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의 졸업학년의 기수가 14·15기쯤 된다. 세브란스는 1908년부터 이미 의사들을 배출하였는데 이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들로 1942년 세브란스의 기수를 따지자면 30기가 훨씬 넘는다.

우리나라 서양식 병원은 갑신정변 때 부상한 민영익을 미국인 의사 알렌이 치료한 것이 인연이 되어 1885년 왕립병원 광혜원(제중원으로 이름 바꿈)이 설립된 것이 처음이다. 이 최초 서양식 병원의 건물은 한옥이었다, 이후 캐나다 출신 선교사이자 의사인 에비슨에 의해 1904년 지어진 서양식 건물 세브란스 병원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현존하는 서양식 병원 건물은 1908년 대한제국기에 지어진 국립병원인 대한의원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초기에는 조선총독부의원으로 바뀌었고, 1911년에는 부속 의학강습소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26년에는 경성제국 대학에 포함되면서 대학병원으로 되었다. 식민지 시절에도 서양식 건축물의 병원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의사는 우리나라에서 변호사와 함께 근대 전문직으로서 매우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의사는 특정 의학교를 졸업하거나 국가고시를 통과한 이들에게만 ‘면허’가 부여되었다. 1913년 말 공포된 ‘의사규칙’에 따르면 당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고등보통학교 졸업 정도의 자격을 갖추고 총독부가 지정한 의학전문학교(또는 제국대학 예과와 의학부)를 졸업해야 했다. 지정받지 못한 의학교 출신이거나 독학자인 경우 총독부가 주관하는 의사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일제 말인 1942년 말 통계를 보면, 당시 한반도에는 3천5백57명의 의사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국사람은 65퍼센트인 2천3백24명이었다. 일본인 의사들은 대부분 관공서와 식민지 의료기관에 취업하고 한국인 의사들은 20퍼센트 정도만 대학병원 등에 들어갈 뿐 대부분이 개업의로 활동했다.

영화에 나오는 안생병원이 식민지 기관이었다면 이 병원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의사들은 그야말로 특별한 존재들인 것이다. 특히 여의사 인영의 존재는 더욱 그러하다. 식민지 시대 말기 경성여자의 학전문학교가 설립되기 전까지 한국인 여의사는 18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일본여자의학전문학교 출신이 대부분이었고, 중국·미국 등 해외 의학교 출신이거나 총독부의원 부속 의학강습소의 청강생으로 졸업하는 정도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의사는 이광수의 아내로도 유명한 허영숙을 비롯해 현덕신, 이덕요, 류영준 등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 인영의 캐릭터도 도쿄에서 유학한 것으로 나오는데 그녀가 대학에서 강의하는 장면은 시대적 배경으로는 다소 무리인 감이 없지 않다. 한국인으로서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의 교수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의사의 진료 모습은 오늘날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체온점검과 청진 및 문진이 기초적 검진이었고, 역시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수련의를 동행해 입원환자를 회진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의사인 수인(이동규 분)이 정남 등 젊은 수련의를 데리고 회진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턴제도는 1914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졸업한 후 임상실습을 하는 과정을 1년 정도 두었는데 인턴으로서 본인이 원하는 과를 순회하면서 실습 경험을 쌓았다. 영화에서는 동원(김태우 분)이 신경외과의 전문의라고 설정되어 있지만 실상 이 무렵에는 특정한 전문의가 있었다기보다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의료 행위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세 가지 에피소드에서는 각각 자살·교통사고·다중인격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제시대 병원의 주요한 환자는 장티푸스·폐렴같은 유행성질환과, 골절·뇌출혈·심장병·결핵·뇌막염·위궤양 등의 급만성 만성질환과, 출산·성병·정신병 환자 등이 많았다. 일제가 운영하는 병원의 환자들은 실제로 대부분이 일본인들이었고 한국 사람들은 소외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의사는 한국인들인데 비해 환자가 일본인인 것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기담>은 익숙하지만 전혀 일상적일 수 없는, 병원이라는 공간에 역사성이라는 스타일을 더하고 비밀스러운 사랑의 애틋함을 보태 공포의 단계를 한 단계 더 고급화시킨 매우 매혹적인 영화이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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