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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있던 지난 6월 7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제64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백미터 예선. 이제 열아홉 살인 김국영(안양시청)이 10초31을 기록해 1979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서말구(55) 전 단거리 대표팀 감독이 세운 한국기록(10초34)을 0.03초 앞당겼다.

김국영은 준결승에서 10초23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본인의 기록을 다시 0.08초 줄이며 10초2대로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월드컵이라는 지구촌 축제에 밀려 언론의 조명을 예상보다 크게 받진 못했지만 김국영의 한국기록 경신은 큰 의미를 담고 있다. 31년간 난공불락이던 기록을 깨면서 국내 단거리 선수에게 ‘이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 당시 준결승에서 임희남(26·광주시청)도 10초32, 여호수아(23·인천시청)도 10초33으로 10초34의 벽을 넘었다.
 

김국영이 키 1백72센티미터, 몸무게 68킬로그램으로 단거리 선수로는 체격이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10초34의 벽을 넘었다는 사실도 한국 육상에 교훈을 준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미국 흑인들처럼 키가 크고 우람한 근육질 선수만이 단거리 기록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김국영은 남들이 두 걸음 뛸 때 세 걸음을 뛰는 ‘아시아형 주법’으로 달린다. 그는 1백미터를 48보에 달린다. 1백미터 세계기록(9초58) 보유자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41보에 달리는 것에 비해 많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그동안 미국 흑인들처럼 다리를 높게 올려 길게 뛰는 게 최선인 줄 알고 있었다.

1991년 4월 19일 태어난 김국영은 안양 관양중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육상을 시작해 3학년 때인 2006년부터 1백미터에서 두각을 나타났다.

이듬해 평촌정보산업고로 진학한 뒤 고교 일인자로 자리를 굳히며 주목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말부터 대한육상경기연맹이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드림팀 프로젝트’로 실시한 단거리 강화훈련을 잘 받아 31년 만에 한국기록을 경신해 1억원의 포상금을 거머쥐었다.

5월 10일 창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39회 전국종별육상선수권대회 여고부 5천미터에서는 열다섯 살 소녀 염고은(김포 제일고)이 혜성같이 나타났다. 15분38초60을 기록, 2005년 이은정(삼성전자)이 세웠던 한국기록(15분41초67)을 3초 이상 경신했다.

키 1백52센티미터, 몸무게 33킬로그램의 가냘픈 몸매에 이제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선수가 5천미터에 처음 도전해 한국신기록을 세워 한국 육상계를 놀라게 했다. 

마라톤계는 염고은을 ‘여자 황영조’로 대성할 재목이라 평가하고 있다. 염고은은 고무공처럼 통통 튀는 주법을 구사한다. 보통 선수들이 체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무릎을 크게 올리지 않고 사뿐사뿐 달리는 것과 다르다.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스피드가 중요한데 가볍게 사뿐사뿐 달리는 것으론 경쟁하기 힘들다. 여자 마라톤 한국기록(2시간26분12초) 보유자 권은주(제주시청)가 1997년 등장할 때 보여준 주법도 통통 튀는 주법이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다카하시 나오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노구치 미즈키 등 일본 선수들도 통통 튀는 주법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염고은은 경기 금파중학교 시절 1천5백미터와 3천미터로 스피드를 잘 다져놔 성장 가능성이 더 크다. 지난해 3천미터에서 9분30초31로 여중부 신기록을 19년 만에 갈아치웠다. 전문가들은 무리하지 않고 잘 관리해서 키우면 국제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한다.

‘마라톤 사관학교’ 건국대의 백승호(20)는 7월 17일 일본 홋카이도 아바시리 시에서 열린 호쿠렌 디스턴스 챌린지대회 5천미터에서 13분42초98을 기록해 2006년 지영준(코오롱)이 세운 한국기록(13분49초99)을 7초01 앞당겼다.

박봉고(19·구미시청)는 2백미터와 4백미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2백미터에서 21초06, 4백미터에서는 46초16의 고등부 최고기록을 세웠다.

5월 19일 열린 대구국제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46초23으로 7위를 했지만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해 3백미터까지 압도적으로 1위로 달리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런 신예들의 등장은 분명 한국 육상에 희망을 던져준다. 한국 육상은 그동안 저변이 얇은 토양 속에서도 유망주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잘 관리하지 못해 사라지게 했다.

마라톤의 경우 ‘제2의 황영조’로 평가받던 엄효석과 전은회 등이 전국체전용 선수로 전락했다. 단거리 선수 중에도 중고교 시절 두각을 나타낸 기대주들이 어느 순간 전국체전용으로 변했다.

전국체전은 육상에 있어 ‘양날의 칼’이다. 국내 대표적 비인기종목인 육상으로선 시도 대항전인 전국체전이 존재함으로써 선수들이 지방자치단체 팀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저변이 얇아 선수는 없고 팀은 많아 영입 경쟁이 심하다 보니 전국체전에서 입상(6위)만 해도 수천만원씩 받게 되는 현실은 선수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

잘나가던 선수가 갑자기 사라지면 열에 아홉은 전국체전용인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해 있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이 전국체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내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맞아 유망주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선 국제대회 경험을 많이 쌓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육상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다. 마라톤을 제외하고는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육상연맹이 내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종목별로 해외 전지훈련 및 대회 출전을 시키고 있어 희망을 품어도 좋을 듯하다.다만 이 프로젝트가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위해 나온 반짝 정책은 아니어야 한다. 세계선수권대회는 지나가는 일회성 행사지만 한국 육상은 계속 전진해야 한다.
 

글·양종구(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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