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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역사를 알면 영화가 재미있다 <황진이>




2007년판 <황진이>(감독 장윤현)가 가장 최근에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만든 영화이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북한 소설가 홍석중의 <황진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이다.

홍석중은 소설 <임꺽정>을 써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홍명희의 손자로 북한에서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4년 그의 소설 <황진이>가 만해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는 남한의 문학상을 탄 최초의 북한 소설가가 되었다.

2007년판 <황진이>는 기존에 각종 야담으로 전해져 오던 황진이의 삶에 ‘놈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더하여 그녀의 삶을 좀 더 입체화하려고 했다.

황진이 집의 하인이었다가 성장하여 화적패가 되는 놈이(유지태 분)와 황진이(송혜교 분)의 사랑을 부각시켜, 기생과 하인이라는 밑바닥 신분을 벗어나고 싶어한 남녀의 슬픈 사랑을 표현했다.

실제 기생이었던 황진이의 삶에 하인인 놈이와 같은 존재가 한명쯤 있었을지는 몰라도 전해 오는 이야기 속에서 황진이가 만났던 남자 중에 놈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황진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송도(오늘날 개성)의 황진사 집의 딸로 태어나, 이웃의 도령이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 상사병에 걸려 죽은 것을 안 뒤 충격을 받아 기생의 길로 나선다. 황진이는 황진사의 적녀라는 말도 있고 황진사와 첩 사이에 태어난 서녀라는 말도 있고, 앞을 보지 못했지만 기예로 드날린 기생 진현금의 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영화에서는 자신의 신분이 내내 양반인 줄 알았던 황진이가 노비첩 소생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 기생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황진이는 공식적인 정사 기록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들은 <송도기이(松都奇異)>나 <어우야담(於于野談)>과 같은 야담으로 전해져 왔고, 시대를 거쳐 오면서 여러 이야기가 습합되고 변형되어 덧붙여졌다.

다만 황진이가 만났던 남자들 중 서경덕, 소세양 등은 조선중기 실존했던 인물이고, 그 당시 그녀가 쓴 시들이 오늘날 남아 그녀의 실존을 증명하고 있다.

황진이는 기생이 된 뒤 명월이라는 기명을 쓰면서 명기로서 이름을 드날렸다. 기생으로서 갖추어야 할 아름다운 미모와 춤, 노래, 가야금 등의 기예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아름다운 사랑시를 짓고 더불어 학자, 선비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유교적 교양도 갖추어 당대에 많은 문사들과 교유했다고 한다.

많은 시를 썼다고 하지만 현전하는 것은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과 <해동가요(海東歌謠)>에 오른 시조 4수와 한시 2수뿐이다. 이 시들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것와 허위의식에 가득 찬 양반들을 조롱하는 내용인데,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다가 결국 무릎을 꿇은 벽계수를 조롱하는 시조이다.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할제 쉬어감이 어떠하리

또 6년간 함께 산 선전관 이사종을 그리워하는 사랑시도 있다.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드란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와 유명한 일화를 남긴 남자들 중에서 서경덕이나 이사종, 소세양 등은 그들의 학문적 성취나 관직 등으로 인해 어떤 인물인지 밝혀져 있지만 벽계수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인지 최근까지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벽계수는 고종 때 서우영이 쓴 <금계필담>에는 종실사람이라고 나오는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세종 후궁소생의 아들인 영해군의 손자로 종친부의 정3품 관직인 도정직을 맡고 있었던 이종숙이라고 한다. 이종숙은 당시 벽계도정이라 불리고 황진이가 생존했던 시기 황해도 관찰사 등을 지내서 그 접점이 꽤 많다.

황진이가 마음먹고 유혹하면 산중 고찰의 이름난 승려까지 다 넘어갔지만, 유일하게 황진이를 여자로 보지 않고 제자로 받아준 사람은 서경덕이었다.

서경덕은 뛰어난 학문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고, 중앙 정부로부터 많은 권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개성 화담 부근에 서재를 짓고 은거하여 연구와 교육에 전념했는데 이로 인해 서경덕의 호가 화담이 되었다.

그는 신분에 관계없이 제자를 받아들여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문하에 모여들었고 황진이도 그중 한 명이었다. 영화에서도 서경덕은 황진이와 하룻밤을 지내면서도 그녀를 여자가 아니라 한 명의 제자로 대접하고 평생의 화두를 던져준다.


한편, 영화 <황진이>에는 황진이가 사랑했던 남자 놈이의 유골을 뿌리기 위해 금강산으로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황진이는 정승의 아들 이생이라는 사람과 반년 동안 금강산을 여행한 적이 있다. 여행 기간에 황진이와 이생은 서로의 신분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동가식서가숙하면서 걸인처럼 금강산을 헤맸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금강산 장면은 실제 금강산에서 촬영해 제작 당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겨울 금강산을 배경으로 황진이가 놈이를 그리워하는 장면은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미모와 멋진 풍경이 어우러져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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