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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마음의 소리로 소통한 국악 한마당




불 꺼진 무대 위로 은은한 조명이 켜진다. 사모관대를 갖춰 입은 청년에게로 관객들의 시선이 고정된다. 청년이 내쉬는 숨은 대금을 통해 청명한 선율로 바뀌어 객석 사이로 울려 퍼진다. 계단까지 꽉꽉 들어찬 관객들은 어둠 속에서 숨죽이며 소리에 집중했다.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통해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는 그 순간, 연주자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연주자는 오직 ‘소리’로서 관객과 소통했고, 관객들은 심금을 울리는 그의 ‘소리’에 박수를 보냈다.

시각장애인들도 어엿한 국악인으로서 갈채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이날의 공연은 ‘실로암 관현맹인 전통음악예술단(이하 관현맹인)’의 창단연주회였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함께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예술혼’의 등불을 켜고 영혼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일을 이 예술단이 시작했다”며 “관현맹인의 빛나는 행보의 첫걸음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고 격려했다.




‘관현맹인(管絃盲人)’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악기를 연주했던 시각장애인 악사를 이르는 말로, “시각장애인 악사는 앞을 볼 수 없어도 소리를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세종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는 국립국악원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관현맹인’을 2011년 3월 2일 창단해 지금은 잊혀진 관현맹인제도를 현대에 재현했다. 시각장애인의 음악적 재능을 발굴해 전문음악 인력을 창출하는 동시에 전통예술을 통한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취지로 마련된 사업인 것.

2011년 2월에 열린 오디션에는 각종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실력은 인정받았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프로 연주자의 길을 박탈당했던 젊은 국악인들이 모여들었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6명의 정식단원과 국악 꿈나무 2명의 예비단원이 선정됐다.

대금독주곡인 ‘청성곡’으로 창단연주회의 시작을 장식한 문종석(대구예술대 대금전공 3학년)씨는 2010 영남판소리보존이사장 이병희 기악부분 준우수상 수상경력이 있는 실력파 연주자다. 이날 공연에선 대금뿐만 아니라 단소, 생황 실력까지 선보였다.

중앙대 국악과에서 정가를 전공하고 2006 동아국악콩쿠르 학생부 은상과 2010 제26회 동아콩쿠르 일반부 정가부문 은상을 수상해 국악인들 사이에선 이미 명성이 자자한 소리꾼 이현아 여창(女唱)은 시조시인 ‘평롱(平弄·한국전통성악곡)’을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노래했다. 김광섭 음악감독의 장구장단에 맞춰 울리는 여창의 곱고도 애달픈 소리는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처럼 이날 관객들의 눈과 귓속에 오래도록 남을 추억을 선물했다.

세번째 순서로 등장한 이민정씨는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가야금병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부가 중 ‘제비점고·제비노정기’를 선보였다.

2002 MBC전주대사습놀이 가야금병창부분 참방(장려상보다 한 계급 높은 상), 2007 전국김해가야금경연대회 병창부문 최우수상 수상이라는 실력을 갖고도 맹학교에서 배운 안마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다. 그나마도 2008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국악의 길과 작별해야만 했던 이씨는 관현맹인과 만나면서 어엿한 가야금병창 연주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날의 무대에서는 신명나는 타악기 소리도 만날 수 있었다.

조주선 한양대 국악과 교수의 판소리에 고수로 등장해 흥을 돋운 이진용, 정철씨는 함께 북채를 잡은 6인의 객원 연주자들과 함께 신명나는 북소리를 선보여 이날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인천혜광학교를 나왔고 세계적으로도 실력을 인정받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단원을 역임한 실력파 타악주자들이다.




강호중 추계예술대 교수는 축하무대에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국악가요인 ‘아버지의 노래’와 ‘꽃분네야’를 불렀다. 강 교수는 “인천혜광학교는 1990년대 후반에 ‘천둥’이라는 실력파 사물놀이단이 있었는데 인기 하모니카 연주자인 전재덕씨도 천둥 출신”이라며, “지금은 들을 수 없는 그 소리를 관현맹인과 함께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국악단의 역사와도 통해 있는 관현맹인의 인연에 대해 말했다.

정철씨는 “관현맹인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생명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연주활동을 펼쳐 저희를 보고 다른 장애인들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날 울린 관현맹인의 소리는 몸의 장애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다른 장애인들의 마음을 등불처럼 밝힐 수 있기에 충분했다.

글·이윤진 객원기자 / 사진·이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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