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평양성>은 전작 <황산벌>의 재미요소를 많이 가져왔다. 전투하는 병사들이 각 지역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고 거시기(이문식 분)가 다시 등장해 산다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은 전작의 설정과 주제의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영화는 전작에 비해 많은 이야기들을 다루려다 보니 산만하고 정리가 안 된 느낌이 다소 있지만, 할리우드 스펙터클과 다른 우리나라식 공성전의 소박함에서 재미를 느끼게 하고, 백제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구려의 멸망과정을 코믹하지만 뼈아프게 그려냈다. 고구려는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삼국사기>는 고구려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했다.
9월에 당나라 장수 이적이 평양성을 함락시켰다…(중략)…
평양성은 한 달 넘도록 포위되었다.
보장왕은 연남산과 수령 98명에게 백기를 들고
이적을 찾아 항복하게 하니, 이적은 이들을 예로써 대접하였다.
그러나 연남건은 오히려 성문을 닫고 항거하며
번번이 군사를 내어 싸웠으나 모두 패하였다.
남건은 군사를 중 신성에게 맡기니 신성은 소장 오사, 요묘와
더불어 몰래 이적에게 사람을 보내 내응할 것을 정하고
5일 만에 성문을 열어 놓았다. 이에 이적은 군사를 내어
성에 올라 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르며 불을 놓아 태웠다.
남건은 손수 자살하려 했으나 죽지 못하고 포로가 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22 보장왕 27년(668) 9월
645년 안시성 싸움에서 혼쭐난 당 태종은 다시는 고구려에 싸움을 걸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이런 고구려가 불과 20여 년 만에 멸망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연개소문의 세 아들들의 분열 때문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던 연개소문이 665년 죽자 고구려에는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연개소문의 뒤를 이어 대막리지에 오른 것은 큰아들 연남생이었다.
영화에서는 연개소문이 큰아들 남생(윤제문 분)을 싫어하고 둘째아들 남건(유승룡 분)을 총애하여 그에게 힘을 실어 준 것처럼 나왔지만, 실제로는 남생은 어렸을 때부터 준비된 후계자였고 연개소문이 죽자 바로 그 자리를 이어 고구려 제1의 권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남생은 자기 힘으로 만든 권력이 아니라 아버지가 물려 준 것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권력을 잡아채 왕까지 자기 마음대로 바꾸었던 연개소문을 따라갈 만큼의 장악력은 부족했다.
영화 <평양성>에서는 연개소문의 사망부터 평양성 포위까지를 연속적인 사건으로 묶어 두었지만, 사실은 연개소문의 사망부터 고구려 멸망까지는 3년여의 시간이 있었다. 남생은 대막리지가 되자마자 남건과 남산에게 중앙정부의 일을 맡겨 두고 일인자로서의 카리스마를 확보하고, 잦은 전쟁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고구려의 지방을 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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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순행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연개소문이 가졌던 강력한 힘이 세 아들들에게 나누어지면서 그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남생은 지방을 돌면서 평양의 남건과 남산을 믿지 못했고 평양성에 남은 두 아우들도 형을 못 믿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에 힘을 키워 보려는 사람들이 끼어들면서 형제들은 그만 등을 돌리고 말았다. 국내성에 있던 남생은 남건이 자신의 아들 헌충을 죽이고 토벌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삼국사기>에서는 남생의 성품을 순후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윗사람을 대하여 말을 잘하고, 민첩하며 활 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개인적인 장점은 동생들의 배신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그는 동생들에 대한 분노로 눈이 멀어 나라의 앞일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자신의 보신을 위해 당나라를 끌어들이고 만다. 666년 6월 남생은 국내성과 자신의 세력권에 있던 6개 성 10만 호의 백성과 말갈, 거란의 무리들을 이끌고 당나라에 항복했다. 그리고 당나라로부터 평안도행군대총관겸지절안무대사라는 관직을 받았다.
그는 한때 자신이 다스렸던 나라 고구려의 멸망을 인도하는 앞잡이로 변신했다. 영화에서는 평양성 포위 때 남생이 성 안에 있었던 것처럼 나왔지만 남생은 처음부터 성 밖에서 평양성 공격에 큰 힘을 보태고 있었다.
남생의 배신으로 고구려가 궁지에 몰리자 연개소문의 둘째아들 남건과 셋째아들 남산의 사이도 벌어졌다. 남생을 내쫓고 남건이 대막리지가 되자 남산은 아버지 연개소문이 세운 허수아비 왕이긴 했지만, 보장왕과 손을 잡는다.
남산은 남건이 평양성에서 버티고 있을 때 보장왕과 의논해 남건 몰래 수령 98명을 데리고 먼저 당나라에 항복해 버렸다.
그에 대한 역사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역사적 사실 속에서 그는 영화 속의 제법 멋있고 의기로운 남건의 모습과는 꽤나 다른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는 형의 권력을 탐해 빼앗았지만 그 권력을 잘 다루지 못한 사람이었다.![]()
남건은 동생과 부하가 몰래 적에게 항복을 해도 이를 사전에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하고, 그들이 견디지 못하고 항복을 꾀할 정도로 폭군이었는지도 모른다.
남건은 자결을 꾀했으나 이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는 능력도 없으면서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나라를 망친, 배신자 남생·남산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고구려에 해악을 끼친 인물이다.
너무 큰 나무 아래는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듯이 연개소문의 아들들은 너무 강력한 아버지 밑에서 욕심이라는 나쁜 점만 배우고 그 외의 장점들은 배우지 못한 삼형제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분열과 급급한 잇속 차리기로 천년역사를 가진 동아시아의 대국 고구려를 한번에 털어먹고 모두 중국으로 갔다. 남생과 남산은 항복의 대가로 당나라의 관직을 얻었고 남건도 유배되었을 뿐 죽지는 않았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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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