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명성을 얻은 에른스트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그가 1977년 미국을 횡단하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집 <굿 워크>를 읽었다. 안타깝게도 이 강연여행 중 슈마허가 사망했다니, 이 책은 그의 유고집인 셈이다.
책을 읽으며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은 이제 낡은 것이 되었다. 그 말의 진정성이나 가치를 무시해서 하는 평가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반드시 인류가 위기에 빠질 터이니,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일찌감치 있었다.
슈마허의 강연은 그 대안의 가장 대표적인 예에 든다.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석유란 마냥 나오는 자원이 아니니 그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느니, 화학비료에 기초한 농업생산을 근본적으로 바꿔 유기농법을 도입해야 한다느니, 노동을 통해 개인의 다양한 성취동기를 만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느니, 개발도상국의 현실에 맞는 이른바 중간기술을 보급해야 한다느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새로운가? 그럴 리 없다. 늘 들어 왔고 대체로 동의해 왔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석유자원에 대한 의존은 높고, 피크 오일이라는 말을 한쪽 귀로 흘리는 경향이 있다. 유기농법에 대해서는 많은 동의를 얻어 생산이나 소비측면에서 확산되기는 했으나, 농업의 주류는 아니다.
입때 먹을거리의 안전 문제가 나오고 식량자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슈마허가 중간기술이라 한 것은 더는 진척이 없다. 말하자면, 쟁기와 트랙터 사이의 그 무엇을 지향하자는 것인데, 슈마허의 발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인도에서 나온 말대로 적정기술이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인다.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도 각 나라의 환경에 걸맞은 기술을 개발하거나 되찾자는 말은 상당히 의미 있다. 특별히 작은 단위의 생산시설을 만들어 공동체별로 요구되는 사항을 해결하자는 것은 여전히 가치 있는 제안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오히려 더 악화일로에 있다 할 수 있다. 몇몇 다국적기업이 기술을 독점한 상황에서 적정기술은 실현되기 어려워졌다.
노동은 어떠한가. 노동조건이 상당히 개선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한다는 것의 철학에 대한 슈마허의 발언에 비춰 보면 아직 멀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노동의 세 가지 목적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 삶에 꼭 필요하고 유용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선한 청지기처럼 신이 주신 재능을 잘 발휘하여 타고난 각자의 재능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는 태생적인 자기중심주의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협력하기 위해서입니다.
세 가지 차원에서의 이런 역할을 통해 노동은 인간 삶의 중심이 됩니다. 그러므로 노동이 없는 인간의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 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슈마허의 이 말을 잣대로 삼아 우리 현실을 점검해 본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성싶다. 한 공동체가 발전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오로지 물질가치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러하지는 않을 터이다.
그렇다면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한다. 집중하고 거대해지고 독점하고 있다면, 나누어지고 작아지는 것의 가치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슈마허는 70년대에 우리의 문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경고했다.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그의 말을 인류사회가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부정할 수 없는 혼란이 우리 앞에 높여 있다. 다시 슈마허의 말을 경청하자. 거기서 이 위기를 벗어날 작은 길을 찾을 수도 있을 터다.
글·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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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