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공부하다 보면 무척 오묘하고 복잡한 철학이나 종교도 결국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싶어진다. 모든 지혜의 글들은 결국 주체와 세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나와 객관적인 현실이 조화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삶은 대체로 억압 받고 불행하다고 여긴다.
내 뜻대로 현실이 움직여주지 않아서다. 또는 세계가 나의 뜻과 가능성을 억압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나를 바꾸든지 세계를 엎어 버리든지. 앞에 해당하는 말이 명상이나 수련일 터이고 뒤에 걸맞은 말이 변혁이나 혁명이 될 터이다.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주체와 세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 철학이나 종교가 말한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의 구성원들이 현실세계를 바꾸기 위해 헌신하는 시대가 있는가 하면, 그 세계와 화해하기 위해 자기성찰을 통해 개인적 변화를 꾀하는 시대가 있다. 철학이나 종교를 너무 단출하게 요약한 느낌은 있지만, 이 틀로 세상을 보는 것도 꽤 유용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형조가 쓴 불교개론서인 <붓다의 치명적 농담>도 앞에 말한 관점으로 볼 만한 책이다. <금강경>을 본격적으로 해설하기 전에 일종의 지적 에피타이저로 쓴 이 책에 반복해서 나오는 내용이 있다. 내가 아는 세상은 객관현실이 아니라 나의 욕망과 편견이 만들어낸, 일종의 매트릭스라는 점이다.
한형조는 이를 “한 개인이 익숙하게 보고 들은 정보, 그가 속한 그룹 안에서의 관행과 어법, 그가 의존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이라 말한다. 흔히 하는 말대로 불교는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고는, 온 세상이 그 색깔이라 여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파하고 아등바등하고 실패하는 이유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보는 셈이다.
과학기술의 놀라운 변화와 발전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이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내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을 스스로 왜곡해서 수용하고 있다는 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불교의 그 넓고 깊은 세계로 들어설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인 듯싶다. 그리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기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니 서둘러 책을 읽어 나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프레임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거듭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은이가 보기에 불교의 고갱이는 단순하다. 객관적인 세계가 실은 ‘인간에 의해 구성된 세계’ ‘주관적으로 의미화되어서만 존재하는 무엇’임을 화들짝 깨달으면 된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이 주술에서 풀려나야 나와 세계의 관계가 바뀔 수 있다고 여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주관적인 환상과 욕망에서 벗어날 적에 비로소 우리는 평안과 안정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더불어 불교는 “자기 관심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주관적 편견과 몰이해를 탈각한 객관, 즉 진정 그러하게 있는 것을 보여주고, 그를 향해 정진해 나아가도록” 권한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여기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네가 이 세상과 다투는 것을 그치면, 세상은 다시 고요해질 것이니. 그때 진정 세상이 이미, 우리가 손댈 필요가 없이 완전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터이다.
지은이는 연기법과 화엄을 설명하면서 상당히 의미 있는 말을 한다. 불교는 “서로 연관된 객관적 사실의 세계”를 보여주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전체에 대한 책임감”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신영복의 <강의>에서도 나온 바 있는 동양철학과 종교의 현대적 가치다. 불교가 ‘오래된 미래’일 수 있는 이유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노장을 전공하고 유학을 공부한 이가 불교 책을 썼으니, 이야말로 동양학의 융합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그의 문체가 어찌나 화려하든지 어려운 내용을 술술 읽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주자가 불교에서 받은 영향이나 장자와 불교의 유사점을 파악해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이제 불교를 이해하는 작은 길이 하나 열렸다.
글ㆍ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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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