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이미지를 찾는 숨바꼭질이라고나 할까. 사진작가 민병헌(56)씨의 회색빛 사진들은 명쾌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프레임 속의 자연과 도시의 풍경들을 뜯어보고 이미지에 몰입해 보라고 속삭이는 듯한 사진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진의 본질은 ‘딱 부러진’ 재현인데, 작가는 이런 본질을 뒤집어버린다. 대기에 녹아버릴 듯한 나무, 설원, 전깃줄의 윤곽 등 그의 사진 속 이미지들을 더듬는 관객의 시선은 점점 예민해진다. 전통 그림의 농담을 완상하듯 민씨의 사진 앞에서 시선의 감각을 되새김질하다 보면 생각이 피어오르게 된다.
지난 20여 년간 <잡초> <안개> <설원> 등의 연작들을 찍으며 특유의 모호한 풍경에 천착해 온 민씨가 최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회고전 형식의 사진전을 차렸다.
<폭포(Waterfall)>란 제목이 붙은 이 전시는 어스름이나 안개에 휩싸인 듯한 풍경 사진으로 성가를 누려온 1990년대 이후 그의 작업들을 최근 <폭포> 연작을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세부 등을 포착한 근작들과 더불어 <깊은 안개> <나무> <설원> 등 기존 작품들까지 70여 점의 사진이 내걸렸다.![]()
민병헌씨는 1987년 돌과 잡초가 깔린 땅을 찍은 <별거 아닌 풍경>으로 본격 데뷔한 이래 줄곧 아날로그 흑백 사진을 고집해 왔다.
현상과 사물의 이미지 자체에 천착하는 모더니즘적 감수성, 촬영·인화의 디테일을 따지는 장인적 작업 방식은 적지 않은 팬층을 거느린 스타작가로 그를 자리매김시킨 배경이었다.
애호가들은 자욱한 안개, 비 오는 날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민씨의 회색톤 사진들을 두고 흔히 ‘동양화 같다’ ‘명상적’이라는 평들을 꺼내곤 한다.
그러나 기실 ‘민병헌표’ 사진들은 고도로 정제된 시각적 ‘게임’에 가깝다. 작가는 보편화한 디지털 카메라 대신 철저히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인화, 현상까지 혼자 도맡는다. 이런 아날로그 수작업의 결과로 빚어져 나온 자연과 도회의 풍경들은 ‘드러낸 것’과 ‘감춘 것’
사이에서 관객에게 손짓한다.
땅 위의 작은 돌이나 안개 속 나무 잔가지, 흰 눈 속 지푸라기 등이 화면의 회색빛과 한 덩어리가 된다. 그 환영 같은 실루엣에서 관객들은 잊고 있었던 사물들의 존재감을 더욱 생생하게 인식하는 역설을 체험한다. 사진평론가 박평종씨가 “그의 서툴고 수줍은 사물 감추기는 일종의 놀이에 가깝다”고 평한 대로다.
특히 근작들은 폭포라는 새로운 자연 소재에서 뽑아낸 찰나의 아름다움을 색다른 시선의 각도와 깊이로 부각시킨다. 절벽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의 생동하는 물줄기를 모노톤의 감도를 최대한 낮춘 아날로그 인화 기법으로 뽑아낸 사진들이다.
무엇보다도 폭포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 생생한 물줄기의 질감이 눈에 들어온다. 물방울의 디테일한 이미지들은 희부연 특유의 화면 속에서 환각처럼 피어오른다.
한편 작가 민씨는 지난 4월 29일 3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 창작부문 대상을 받았다.
글·노형석 (한겨레 문화부 기자)
5월 7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 문의 ☎02-418-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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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