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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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석 화백은 두 팔을 추스르고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왼팔이 잘 펴지지 않는다. 그의 의수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7년 가까이 사용한 의수를 새것으로 다시 교체할 때가 됐다.
오랜 시간 함께한 의수에 정이 들었지만 결국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야 만다. 석 화백의 왼쪽 귀에는 언제나 핸즈프리가꽂혀 있다. 최근 섭외요청이 잦기 때문에 전화통화를 위한 필수품이다. 의수, 핸즈프리와 늘 함께 지내게 된 사연은 두 팔을 잃은 그날부터 시작됐다.
1984년 10월 24일, 한 기업의 전기 책임자였던 석 화백은 기계 점검 중 2만2천9백볼트의 전기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그 정도의 전압에 감전되면 보통 팔다리를 모두 잃는데 오히려 다리가 남아 있다는 것에 다행이다 싶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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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화백은 얼마 전 아들을 유학보내기 위해 자신의 작업실을 포기했다. 이 때문에 요즘 오전 시간에는 집으로 옮겨온 작품을 정리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다섯 살 된 아들에게 새의 그림을 그려준 것이 계기였다.
그는 “두 팔이 없어 안아주지도, 업어주지도 못했던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는데 그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처형이 그의 미적 재능을 알아봤다. 석 화백은 처형의 강력한 권유로 아내의 식당개업도 미룬 채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전문교육을 받기 위해 발품을 팔았지만 그의 장애를 받아주는 교육자는 없었다. 그러다가 여태명 교수(원광대)를 만나 본격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서예크로키’라는 새로운 기법을 탄생시킨 주인공이 됐다.
그는 “남들이 다 하는 분야에 따라가고 싶지 않았고 더욱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며 서예크로키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무대 바닥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화선지 위에 한 손에는 붓을, 다른 손에는 붓통을 걸고 자신의 의수를 다 드러낸 석 화백. 모델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하여 석 화백도 검은 먹을 하얀 화선지 위에 춤을 추듯 움직이며 물들인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땐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깊은 몰입에서 빠져나온 뒤 석 화백은 탈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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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화백의 점심시간은 절대 외로운 법이 없다. 그는 “제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그날 저의 오른팔이 됩니다. 대신 밥 먹을 땐 까탈스럽게 굴면 안 돼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의 의수는 붓을 잡기 편리하도록 각도를 고정시켰기 때문에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 없다. 주로 그의 오른팔이 되어주는 사람은 아내 곽혜숙씨다. 그가 지금처럼 그림을 그리기까지 아내의 전적인 지원이 있었다.
석 화백은 “사고 후 눈을 떴을 때 부인이 비관하지 않고 편안한 얼굴로 자신을 위로했다”며 사고 당시 25세였던 아내의 의연함을 기억했다. 그리고 아내의 도움으로 사고 후 단 한 번도 좌절한 적이 없었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했다.
석 화백은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그림 그리기라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기 때문에 정말 기뻤다”며 “모든 활동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얼마나 재밌었겠어요?”라며 오히려 되물었다. 그는 “전기 기술자였던 당시에는 먹고살기 위해 일했지만 이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석창우 화백은 최근 또 다른 도전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아내가 가야금을 배우는 길을 따라 나서서 그도 가야금 연주를 시작한 것.
농현까지 눌러주며 감칠맛 나는 아리랑을 연주해 보인 석 화백은 “각 지역의 아리랑을 모두 연주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지금은 갈고리에 테이프를 감고 현을 누르지만 골무를 대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뜯고 눌러주고 풀어주며, 손을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가야금 연주는 그에게 벽이 아닌 매력 그 자체였다. 12개의 현을 뜯고 누르는 일이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좋아서 하는 일이고 오히려 어려운 동작들 때문에 더 재밌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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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야금을 연주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일까. 이날 국악방송의 <일요초대석> 녹음이 예정 돼 있었다. 진행자 정유희 DJ는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실사단 앞에서 펼쳤던 퍼포먼스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석 화백은 올림픽 실사단이 자리를 옮기는 이동경로에서 15분 동안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더블 악셀을 그렸다. 실사단은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경이로운 퍼포먼스에 매료되어 주목했다. 그리고 그의 퍼포먼스에 감동받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석창우 화백의 지난날을 향해갔다. 사고 당시의 생생한 회고와 미술의 입문 계기, 아내의 헌신 등 감동적인 이야기가 뒤를 이었다.![]()
방송을 마친 후 저녁식사. 애주가인 석 화백은 막걸리와 매운 아귀찜을 주문했다. 그는 “과거는 참고사항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자기가 지금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해라”라고 조언했다.
두 팔을 모두 잃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좌절해 본 적이 없다는 그의 인생은 긍정의 힘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림에 이어 가야금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는 석창우 화백의 다음 도전은 무엇일지 기대된다.
글과 사진ㆍ조병휘 (서울대 체육교육과)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은 참신한 시각으로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이슈, 정책 등을 취재하고 다양한 홍보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활동기간은 1년으로, 현재 6기 10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의 열정 넘치는 이야기는 문화체육관광부 공식블로그 도란도란문화놀이터(culturenori.tistory.com)에서 더 자세히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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