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육개장은 삼복의 시식인 개장국에서 비롯된 음식이다. 개고기가 식성에 안 맞는 사람들을 위해 쇠고기로 개장국처럼 끓인 것이 육개장의 내력이다. 식품사학자 고 이성우 교수는 육개장을 “개고기는 비린내 때문에 부엌에서 다루기를 꺼리고, 귀한 아이에게는 부정하다고 하여 먹이지 않는 집이 많다. 또 아이들이 구장(狗醬)을 먹고 나서 냉수를 마시면 촌백충(寸白蟲)이 생긴다”고 해서 대용으로 개발된 것이라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여름철이면 개가 귀해져서 쇠고기로 대신 국을 끓여 먹은 것이 유래라는 주장도 한다.
못 먹어서 그랬건 귀해서 그랬건 육개장이 개장국에서 파생된 쇠고기국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식당들이 흔히 쓰는 ‘육계장’은 잘못된 표기이다. 닭고기로 끓인 닭개장을 굳이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표준말이 아니다.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부르는 북한에서도 육개장을 ‘소단고기국’이라 한다니 그 타당성은 확인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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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 조리법에 대해 1869년에 출간된 <규곤요람>은 “고기를 썰어 장물 풀어 물을 많이 붓고 끓이되 썰었던 고기가 능숙히 익어 고기정이 풀어지도록 끓이고 종지 파 잎 온채 넣고 줄알 치고 후춧가루 넣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그 이전의 문헌인 <경도잡지>에 나와 있는 개장국 끓이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여 구장대용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육개장을 대구탕(大邱湯)이라 했다. 육개장이 개고기 대신 쇠고기로 끓인 탕이라 해서 ‘代狗湯(대구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는데 그것이 대구에 가서 ‘大邱湯(대구탕)’으로 정착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두 이름이 뜻은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것은 흥미롭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육개장을 대구의 이름난 향토음식으로 꼽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대구탕이다. 소설가 이주홍은 “약간 변형된 대구의 육개장이 상경해서 서울의 식적(食積)에 오르면서 대구탕이라 불리었다”고 했다. 대구탕은 서울식 육개장처럼 고기를 잘게 찢어서 얹는 것이 아니고 고깃덩어리를 그대로 푹 삶아 고기의 결이 풀릴 정도로 익힌다고 한다. 파, 부추, 마늘을 많이 넣어 더 푸짐하고 얼큰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은 그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서 명확한 구분이 쉽지 않다.
서울의 육개장은 물론 대구의 육개장도 식당마다 재료와 조리법이 달라 원형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1800년대 말의 요리책 <시의전서>에 나오는 육개장에는 창자와 양에다 해삼, 전복까지 들어가니 그때부터도 집집마다 다른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대구의 폭염이 개장국을 대신할 이열치열의 대구탕을 낳은 배경이라는 견해에는 수긍이 간다.
대구탕이 육개장의 모체라는 설도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9년에 간행된 잡지 <별건곤>에는 “대구 육개장이 대발전을 하야 본토인 대구에서 서울까지 진출을 하였다”는 글이 실려 있다. 육개장이 궁중요리에 뿌리를 둔 서울음식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데 어느 쪽이 원조인지를 단정하기는 힘드나 부산탕이나 광주탕이 따로 없는 걸 보면 대구탕의 존재가 특이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 대구탕을 손님의 요청에 따라 국 따로 밥 따로 내게
된 것이 오늘날의 따로국밥이다.
서울 용산역 앞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하다가 연전에 마포로 자리를 옮긴 역전회관의 육개장은 얼큰하면서도 제법 구수한 맛으로 이름을 얻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을지로3가의 조선옥은 대구에서도 사라진 대구탕이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고, 대구에서는 비슷한 연조의 옛집식당이 유명하다.
글·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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