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한때 그만큼 잘나가던 사람도 드물었다. 만 스물한 살 때인 1783년 과거 급제 후 그가 벗들과 뱃놀이 갈 때 광주 부윤이 악공(樂工)들을 ‘협찬’했다. 이후 20년 가까이 승승장구였다. 관직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당대 최고라고 자부하던 그는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를 총애하던 정조가 1800년 세상을 떠나고, 서학쟁이로서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그의 앞엔 유배의 길만 남았다. 올해로 탄생 2백50주년을 맞은 다산 정약용 이야기다.

1801년 경상도 포항 장기(長耆)로 보내져 7개월,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옮겨 18년을 지내야 했던 그는 유배지에서 많은 한시를 남겼다. 다산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정민 한양대 교수가 다산의 유배시 120여 수를 모았다. 다산의 독백이라 할 민얼굴을 보여주는 시들이다.


처음 장기로 유배 갔을 때는 후회도 있지만 기개는 여전했다. 그러나 유배가 길어지면서 의기소침해진다. ‘밤(夜)’이란 시에선 ‘병 낫자 봄바람은 떠나버리고/시름 많아 여름밤은 길기도 하다’(病起春風去 愁多夏夜長)라 하고, ‘귀양지의 여덟 위안’이란 시에선 ‘서풍은 고향 집 지나서 오고/동풍은 나에게 들러서 간다’(西風過家來 東風過我去)며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바람에 빗대 노래했다.

‘괴로운 비 괴롭다 일부러 내리는 듯/밝은 해 나지 않고 구름도 안 걷힌다’(苦雨苦雨 雨故來 白日不出雲不開)며 그칠 줄 모르는 장맛비에 언제 풀릴지 모르는 유배 생활을 오버랩시키고, 흰머리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흰머리 다시금 검게 할 수 있다 한들/이 마음은 말라버려 다시 젊기 어려우니’(白髮可使有還黑 此心已枯難再榮)라 한다. 절망, 분노, 좌절의 끝에 깊은 성찰이 떠오른다.

‘부귀란 진실로 한바탕의 꿈/궁함 또한 한바탕 꿈일 뿐일세./꿈이야 깨고 나면 그뿐인 것을/육합(六合·천지)도 한 차례 장난인 것을.’ 이런 성찰로 스스로 추스린 다산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강진 시절의 대표작을 이뤄냈다.

유배를 갔어도 천재 소리를 듣던 기억력은 그대로여서 한시에도 동양 고전과 고사를 자유자재로 등장시킨다. 그러나 자칫 장애물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장애물을 현대상황에 맞게 해체한 정민 교수의 솜씨 덕분에 2백년 전 한 지식인의 내면 변화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인생의 고단한 순간에 들춰보면 위안이 될 글이다.

글·김한수 (조선일보 문화부 출판팀장)


자유를 향한 머나먼 질주 42.195km
제임스 라이어던 지음 | 별숲·9천원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조시아 투과니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한 소설이다. 조시아는 인종격리정책이 자행되던 시대에 달리기를 통해 평등한 세상을 이루어내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불평등과 억압, 비참한 조건을 극복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그의 삶을 읽다 보면 자유와 평등, 평화를 꿈꾼 한 인간의 생애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새기고 싶은 명문장
박수밀ㆍ송원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1만5천원
가슴에 품은 한 문장의 힘은 크다. 이 책은 공자에서 김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선조가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되뇌었던 명문을 소개한다. 단순히 문장만이 아니라 문자의 전후좌우 맥락과 원문을 함께 소개해 사유의 폭을 넓힌 점이 눈길을 끈다. 선조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문장들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명문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다.

질병의 종말
데이비드 B. 아구스 지음 | 청림Life·1만7천원
미국의 유명한 암 전문의인 저자가 건강과 질병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통해 기존 상식을 깨는 새로운 의학지식과 건강관리법을 제시했다. ‘건강기능식품의 장기복용이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등의 주장과 함께 개인의 생리조건, 가치관 등에 따라 스스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맞춤형 건강 관리법도 담았다. 저자는 스티브 잡스의 주치의이기도 했다.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