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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책 읽어 주는 남자 <경연, 왕의 공부>




정치인이나 경영인들이 모여 조찬 세미나하는 장면을 자주 본다. 바쁜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모습이 좋다. 한동안은 경영혁신을 주제로 한 세미나들이 많더니, 몇 년 전부터는 인문학을 주제로 한 공부도 늘어난 듯 싶다. 반가운 일이다. 기실, 남이 한 경영혁신을 뒤늦게 배워 현장경영에 응용한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한 사회의 리더들이 이제야 인문학 공부하는 것이 만시지탄이라 느낄법한 책이 있다. 김태완이 옮기고 쓴 <경연, 왕의 공부>가 그것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왕들이 신하를 선생으로 모시고 고전을 공부했던 경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사극을 보노라면 가끔 나왔던 그 장면이 특별하고 일시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제도적이고 일상적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다른 무엇보다 왕과 신하는 주종관계라 할 만하다. 그런데 신하가 왕을 가르친다면, 이는 관계의 변화를 뜻한다. 경연(經筵)이다. 이런 이중구조는 우리가 알던 조선시대하고는 전혀 다른 이면의 세계를 드러낸다.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점이었을 성싶다.


전제적이고 독재적인 정치가 펼쳐진 것이 조선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조선은 역시 성리학의 나라였다.

공부를 통해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고, 이런 이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왕세자 시절부터 신하들이 고전을 가르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욱이 왕은 정사를 홀로 하는, 절대권력을 휘어잡은 통치자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사대부 계층의 의지가 왕을 통해 실현되는 정치제도였다 싶기도 하다.

지은이는 경연의 실상을 알 수 있도록 고봉 기대승의 <논사록>과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를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을 달아놓았다.

이이의 것은 제목과 달리 경연 자체에 대한 이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 그 시대를 풍미했던 유학자들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흥미로운지라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각 사람의 장단점이 소상히 밝혀져 있는데다, 젊은 율곡의 치기와 자신감도 엿볼 수 있다.

기대승에 대해 “널리 글을 읽고 잘 기억하였으며, 기개가 호방하고 높아서 담론을 하면 좌중을 제압하였다”라고 평가하면서도 “그의 학문은 다만 널리 변론하고 많이 늘어놓기만 했을 뿐 마음을 다잡고 실천하는 공부는 없었다. 또 이기기를 좋아하는 병통이 있어서 남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는 까닭에, 지조 있는 선비와는 화합하지 못하고 아첨하는 사람이 그를 많이 따랐다”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기대승의 <논사록>은 경연이 얼마나 치열하게 이뤄졌는지 알려주는 귀한 자료다. 1567년 12월 9일 선조와 함께 한 경연을 보면 이렇다.

선조가 물었다. 대학에 보면 “덕이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다라고 하였다. 재물은 말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한 까닭은 무엇인가?”라고. 그러자 기대승이 답했다.

“재물이란 사람의 생계수단이기 때문에 성인이 중하게 여겼습니다. 옛사람의 말에 먹는 것이 백성의 하늘이라 하고, 역에서는 무엇으로 백성을 모으는가? 재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살아가는 이치는 반드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니 하루도 재물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다만 재물을 위주로 하면 이욕의 마음이 생겨서 다툼과 송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덕의 근본이라 한 것입니다. 백성이 편안한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집니다. 백성이 풍족하면 임금이 누구와 함께 풍족하지 않겠습니까?”

경연은 고전에 비추어 오늘의 밝은 길을 찾고자 한 노력이었다.

성리학을 토대로 한 사회에서나 가능했던 제도다. 그러니 이를 제도적으로 오늘에 되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경연을 과거의 유물로 남겨놓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사회지도자들이 옛사람의 정신을 살려 고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 현실에 적용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상식과 교양으로서 공부가 아니라 성장과 변화, 그리고 창조적 응용을 위한 공부였다는 점을 기억하며 말이다.

글·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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