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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역사를 알면 영화가 재미있다 <음란서생>




영화가 얄팍한 재미 하나만을 풀어나가지는 않는다. 영화는 마지막에 정빈(김민정 분)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관점의 사랑을 택한 세 남자, 윤서·임금·조내관을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이 가진 다양한 면모들을 고민하게 하고, 비록 음란소설을 쓰지만 더 잘 쓰고 더 많은 사람이 읽어 주기를 바라는 창작자의 끝간 데 모를 욕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윤서(한석규 분)는 웬만하면 남편의 안전을 바랄 법한 아내에게도 비겁하다고 욕을 먹는, 매일같이 계속되는 정쟁의 틈바구니에서 좀 쉬고 싶어하는 소심한 남자이다. 아니 소심한 남자로 보인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는 명성이 자자하지만 이도 그에게는 별로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인생 자체가 그저 근신 속에서 억눌린 상태로 지속될 것만 같은, 울분이 있어도 표현하거나 터뜨릴 길 없는 고매함을 숙명으로 삼고 사는 양반 그 자체이다. 그런 그의 직책은 사헌부 장령이다.

이 직책은 사헌부(司憲府)의 정사품(正四品) 관직으로 꽤 높은 자리였다. 주 업무는 감찰(監察)이었는데, 시정(時政)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밝히고, 관리들의 비행과 불법행위를 따져 살피는 동시에 어지러운 풍속을 바로잡으며, 백성들이 원통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이를 풀어 주고, 지위를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것을 막는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힘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업무를 처리했다. 요즘으로 치면 검찰의 고위직인 셈이다.




윤서는 정빈이 소장했던 그림을 표구하는 과정에서 가짜로 바꿔치기한 자를 수사하다가 우연히 음란소설을 빌려주는 세책방 주인 황가(오달수 분)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음란한 소설을 쓰는 일이었다. 그것도 많은 사람이 읽어 주는, 매우 자극적이고 그 누구보다 짜릿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학자로서 명문장가라는 칭송을 들었을 때는 별반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윤서는 자신이 쓴 소설에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이야기에는 끝도 없는 창작열을 불태우고 최고가 되기 위해 애쓴다. 진정 흥미있는 일을 찾은 그는 소설을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다. 그러기에 그는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삽화를 소설 속에 넣기 위해 당색이 다른 광헌(이범수 분)을 끌어들이고 임금의 여자인 정빈을 유혹하기도 한다.

조선후기 특히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이르면 패설, 고담이라고도 불리는 소설이 성행하였으며 이 중에서 국문으로 쓰여진 소설은 언패, 언서고담이라고도 불리며 규중의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크게 유행하였다. 영화의 주인공 윤서가 쓰는 소설도 바로 이 국문으로 쓰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소설양식의 글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은 15세기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라고 하고 국문 소설은 16세기 허균이 쓴 <홍길동전>이라고 한다. 이들 소설은 17세기를 거쳐 18세기 말부터 경제적 안정과 함께 문화적 욕구가 성장하면서 크게 성행하기 시작했다.

조선후기 유행한 소설들은 대개 한 사람의 일생이나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적게는 한권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영화에서 윤서가 쓰는 책 <흑곡비사>처럼 시리즈로 연속하여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남아 있는 국문 소설은 6백여 종이 되는데 이들 국문 소설은 작자가 거의 밝혀져 있지 않다. 국문 소설을 짓는 일이 명예롭지 않다고 여겨 대개 가명이나 필명을 쓰고 이름을 숨겼기 때문이다.

이름이 남아 있지 않은 작가는 영화 속 윤서처럼 사대부일 수도 있고 그 이하 신분일 수도 있는데, 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책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이익이 발생했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참가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소설은 영화에서처럼 작가가 글을 쓰면 이를 몇 권으로 필사하여 세책방 등에서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퍼졌다. 필사본은 독자가 늘어나면서 여러 번 필사되었는데, 필사하는 과정에서 개작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인기가 높은 소설일수록 이본(異本)이 많았다.

필사하는 방법 외에 전기수라고 하여 저잣거리에서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전기수는 내용이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소설읽기를 그만두고 사람들이 돈을 던져 주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19세기 초 무렵에는 필사본 책이 인기가 치솟으면 방각판으로 인쇄를 하여 대량으로 찍어 내는 경우도 있었다.

영화에서는 황가가 겉으로는 유기상을 하면서 안으로는 음란소설을 쓰는 작가를 섭외, 창작하게 하고 이를 유통하는 일을 해 돈을 버는데, 실제로 서울에서는 시리즈로 나오는 필사본 소설을 많이 모아 놓고 빌려주면서 돈을 버는 세책방이 번창했다. 이들은 영화 속 황가처럼 작가에게 돈을 주고 소설을 쓰도록 해 소설의 성행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영화 속 윤서의 소설 <흑곡비사>처럼 음란한 소설이 조선시대에도 있었을까. 현전하는 국문 소설 중에는 완전히 성인물인 소설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얼마 전 발견된 <북상기>라는 19세기 중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희곡의 내용이 윤서의 소설을 방불케 할 만하다고 하니, 지금은 전해지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도 음란소설이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리고 영화 속 윤서처럼 고매한 명성과 결론 없는 정쟁에 시달리던 한 사대부 양반이 숨겨진 은밀한 창작열에 취하여 그 누구보다 음란한 상상 속에서 성인소설을 써 내려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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