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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역사를 알면 영화가 재미있다 <모던보이>




때는 바야흐로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세상은 전쟁으로 치닫고 역사의 향방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시절이었다. 친일파 아버지 덕분에(?) 조선총독부 건설과 제1서기관으로 근무하는 이해명은 나라와 역사 같은 건 상관 없이 자신을 로맨티스트라 부르며 말초적 향락에 세월을 보내는 젊은이다.

그런 그가 한눈에 반한 여인은 ‘구락부(클럽)’의 댄서이자 양장점의 재봉사이자 유명 일본 여가수의 그림자 가수인 조난실(김혜수분). 그러나 그녀의 실제 정체는 ‘사애단’이라는 지하 독립운동 테러단체의 수장이었다. 여기서부터 모던보이 이해명의 삶은 가짜 천진난만의 세계로부터 빠져나와 국가와 민족이라는 엄혹한 현실 앞에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는 전편에 걸쳐 1930년대 최첨단의 아이콘이던 모던보이의 삶을 보여준다. 영화는 1930년대 식민지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져 보이는 서구적이고 사치스러운 이해명의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날아갈 듯한 양복차림에 먼지 하나 없는 백구두, 하얀 중절모를 갖춰 입은 이해명은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점검한다.




이해명의 패션컬렉션은 오늘날 연예인의 모습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화려하고 다양한데 이는 실제 1930년대 잘나가던 모던보이의 모습이기도 하다. 당시 모던보이들은 요즘 사람들 이상으로 유행에 민감했고 브랜드를 따졌다.

모던보이(Modern Boy)란 말은 1930년대에 유행하던 말로 모던걸(Modern Girl)과 한 짝을 이루어 주로 새로운 문물에 경박하게 동조하고 최첨단 유행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는 말로 쓰였다.

모던걸과 비슷한 말로는 신여성이란 단어가 있지만 신여성이 좀 더 지사적이고 선구자적 의미를 가졌다면 모던걸은 최첨단 향락을 무조건 따라하는 부류로 치부되었다. 실제로 모던걸이라 불리던 여성군들은 대개 카페 여급, 신문물을 받아들인 기생 등이 많았다. 영화 속에서 조난실은 처음에는 모던걸로 보이나 알고 보니 신여성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한편 모던보이는 신문물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인텔리 남성군들로 한복보다는 양복을 선호하고 모던걸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을 일상으로 삼는 사람들을 일컬었는데, 이들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뉘었다. 식민지 조선은 일본의 착취 대상이었기에 소비수준에 비해 경제수준은 형편없었고 당연히 대학을 나온 인텔리남성들이 취직할 마땅한 자리는 거의 없었다. 여기서 모던보이는 적극적 친일을 통해 돈과 알량한 지위를 확보한 층과 자존심상 친일행위는 못하지만 새로운 문물은 마냥 좋은 룸펜형 모던보이로 나누어진다.


영화 속 이해명은 두말할 것 없이 친일파의 아들로 전자에 속한 모던보이였다. 그는 친일하는 일에 전혀 양심의 가책도 없으며 자신이 친일을 한다는 자각조차 없는 인물이다. 그가 총독부에 근무하는 것도 무언가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룸펜보다는 보기 괜찮아서 택한, 직업도 액세서리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를 얼떨결에 독립운동에 참가시키고 영화 말미에는 진정한 독립운동가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조난실에 대한 사랑이었다.

영화 속 조난실은 모던걸로서 못하는 게 없는 여인이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양복 만드는 솜씨까지 초일류인 데다가, 여자 몸으로 독립운동단을 이끄는 카리스마도 겸비했다.

영화 속에서 이해명과 조난실이 처음 만나는 장소는 댄스홀인데 실제로 1937년까지 우리나라에 합법적인 댄스홀은 없었다. 당시 일본에는 50여 개가 넘는 댄스홀이 있었다는데 한국에는 합법적으로는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1937년 잡지 <삼천리> 1월호에는 경무국장에게 서울에 댄스홀을 허가해 달라는 청원서가 실리기도 했다. 이 청원서의 제출자는 레코드회사 문예부장 이서구와 연극배우이자 유명한 ‘비너스’ 다방의 마담이었던 복혜숙, 카페 여급, 영화배우, 기생 등이었다. 그야말로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대표 인물군들이 댄스홀에 대한 열망을 숨김없이 표출한 것이다.

전쟁 탓이었는지 합법적 댄스홀은 없었지만 1937년 당시 서울에는 많은 카페들이 있었고 이 카페들은 종종 댄스홀로 급변하기도 했다. 주로 추던 춤은 ‘촬스톤’이라는 사교춤이었고 열광하던 음악장르는 재즈였다. 영화 속에서도 조난실은 재즈에 맞춰 춤을 추고 재즈곡을 노래한다.

하지만 조난실이 영화 초입에 부르는 일본 노래는 최근 일본 뮤지션이 작곡한 재즈곡이고, 영화 말미에 이해명과 조난실의 사랑의 주제곡이 되는 노래는 1922년에 발표한 김소월의 시 <개여울>에 1966년 작곡가 이희목이 멜로디를 붙인 곡을 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개여울>은 1970년대 가수 정미조가 불러 유행을 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조난실이 그림자 가수로 부른 일본어곡 레코드를 이해명이 틀어놓고 따라 부르자, 난실이 해명에게 그 곡의 한국어 가사-김소월의 시-를 속삭여주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애틋한 장면에 쓰였다. <개여울>의 내용은 이러하다.

당신은 무슨 일로 / 그리합니까? /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 돋아 나오고 / 강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 안노라시던 /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 나와 앉아서 /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 안노라심은 궂이 / 잊지 말라는 부탁입니다


노래는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암시하듯 쓸쓸한데, 1960년대 노래임에도 1930년대 풍경을 정교하게 복원해 낸 영화의 장면과 어울려 짙은 감동을 안겨준다.

글ㆍ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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