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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공연계가 수군댄다 "철밥통이 변했다"고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극단은 지난해 7월과 8월 각각 재단법인으로 전환했다. 일부 단원들의 반발 등 진통도 따랐지만 법인 전환 이후 두 단체는 맨 먼저 ‘철밥통 단원제’를 수술했다.

재창단한 국립현대무용단은 오디션을 거쳐 단원(비상근)을 새로 뽑았다. 국립극단도 백성희·장민호 두 원로배우만 빼고 기존 단원을 모두 내보냈다.

종전에는 전속 형태이다 보니 공연에 관계없이 꼬박꼬박 월급이 나왔고, 쫓겨날 염려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지난해 초 기준으로 월급을 받았던 정단원 23명의 평균연령이 53.2세일 정도로 극단은 고령화돼 있었다.

일부 배역도 ‘짬밥’에 따라 주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공연 때마다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 실력이 없으면 배역도, 수입도 기대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뽑힌 짱짱한 출연진은 극의 재미로 이어졌다. 이변의 신호탄은 국립현대무용단이 쐈다. 지난 1월 29~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린 창단공연 ‘블랙박스’가 무용, 그것도 현대무용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추가 공연까지 완전 매진된 것이다.




현대무용은 난해하다는 편견을 깨고 이미 검증된 8개의 작품을 갈라쇼처럼 재미있게 엮은 것이 주효했다.

국립극단의 법인 전환 뒤 첫 작품 ‘오이디스푸스’(1월 20일~2월 13일) 역시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표가 동났다. 국립극단 공연이 매진되기는 2001년 인기스타 김석훈 주연의 ‘햄릿’ 이후 10년 만이다.


법인 후발 주자인 ‘연극’과 ‘현대무용’의 선전에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발레’였다. 10년 전 일찌감치 재단법인으로 전환한 국립발레단은 발상의 전환으로 승부수를 걸었다.

고전발레의 정수 ‘지젤’을 준비하면서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을 선택한 것이다.

파리 버전이 국내 무대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그 결과 공연(2월24~27일)도 전에 전회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 1962년 창단 이래 약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가격도 거품을 뺐다.

추가 판매에 들어간 좌석은 시야 확보가 덜 되는 단점을 감안해5천원으로 책정했다.

앞서 국립현대무용단은 좌석 구분 없이 모든 자리를 1만원에 판매하는 파격 시도를 감행했다. 국립극단도 전 좌석 1만원 균일가의 사전 공연(프리뷰)을 가졌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국립극장 산하에 있다가 법인 등으로 독립하다 보니 단체 간 경쟁심리도 작용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실제 국립극단은 홍보 예산을 대폭 늘렸다.

국립극장 시절 편당 1천만원 쓰던 홍보비를 ‘오이디푸스’ 때는 3~4배 더 썼다는 후문이다. 공연 시작 전부터 서울 대학로·명동·압구정동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빨간색 ‘오이디푸스’ 홍보 깃발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 단체들은 단원뿐 아니라 ‘머리’도 바꿨다.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극단은 초대 예술감독으로 홍승엽과 손진책을 각각 영입했다.

모두 공연판에서는 알아주는 실력파들이다. 30년 이끌어 온 극단 ‘미추’를 아내(김성녀)에게 맡기고 국립극단에 합류한 손 감독은 신고작에 한태숙(연출가), 박정자·서이숙·이상직(주연배우) 등 이름값하는 스타들을 끌어들였다.

연임에 성공한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은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를 ‘지젤’ 남녀 주역에 특별 출연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법인화 이후 국립극단의 첫 작품 연출을 맡은 한태숙 연출가는 국립극단의 고루한 한국적 공연을 깨는 변화를 시도했다.

묵직한 희랍비극과 현대적 재해석 사이를 왕래하며 세련된 연극무대를 선사했고, 중극장 무대에서 미학을 완성해 호평을 받았다.


국립극단, 국립현대무용단 등의 성공 이면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개혁 드라이브가 큰 역할을 했다. 작년 8월 국립극단 법인화 발족을 앞두고 많은 공공 예술기관 단체들은 법인화를 하면 상업성만 추구하게 돼 예술적 품격을 훼손하게 된다며 법인화에 반대했다.

연극계 원로 24명도 성명을 내 법인화 반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문화부는 침체된 국립극단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체질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설명회를 열어 운영 체계와 주요 사업 등 재단법인 국립극단 설립 계획안을 알렸다. 연극계 반발이 거셌지만 설득 과정을 통해 진통을 이겨냈다.

문화부는 국립극단 체질개선을 통해 한번 국립극단 단원이 되면 평생 일자리가 보장되던 ‘닫힌’ 시스템을 바꿨고, 모든 연극인이 참여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을 만들었다. 예산도 늘렸다.

재단법인 전환 이후 연간 35억원이었던 예산을 50여억원까지 늘렸다.

국립극단 운영취지가 공공성을 견지하기 위한 것인 만큼 국립극단이 재정조달에는 신경을 안 쓰고 작품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히 예산을 지원한 것이다. 결국 국립극단의 체질개선 및 정부의 재정지원이 뒷받침되면서 첫 작품 ‘오이디푸스’는 성공작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난 7월 공연계의 숙원사업이었던 국립현대무용단을 재단법인 형식으로 전환시킨 것 또한 문화부의 개혁성과 중 하나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재창단 이후 창단공연, 정기공연 등의 과정에서 공개경쟁 오디션을 통해 작품별로 무용수를 뽑고 있다. 경쟁력이 구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화부는 이외에도 국립현대무용단을 통해 현대무용 아카데미 운영, 세계 무용계와의 교류 등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우려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국립단체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지나친 경쟁구도 유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너무 상업적으로 흐를 경우 예술노동자들의 권익이 침해될 수 있고 (작품의) 예술적 품격도 훼손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매진 거품’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 단체는 자체 예산으로 일정 분량 표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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