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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한국 생활 16년째 이자스민씨의 다문화란




이자스민 씨는 유명인사다. 방송을 많이 해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적잖다. 그는 현재 EBS에서 한국어 강좌를 진행하고 있고 KBS <러브 인 아시아>의 고정패널로 출연 중이다. 강연 일정도 빡빡하게 잡혀 있다. G20 관련 강연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여러 곳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봉사활동도 한다. ‘물방울나눔회’라는 이주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쉴 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10대인 아들과 딸은 엄마 보는 게 어려워졌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이자스민 씨는 “아이들에게는 사실 미안하다”며 “그래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다부지게 말했다.

‘다문화’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다문화란 단어가 처음 생겼을 때는 좋았어요. 이 사회에서도 이주 외국인이란 존재가 인정받기 시작한 거잖아요. 하지만 요즘엔 ‘다문화’란 단어가 취지대로 쓰이지 않고 있어요. ‘언제 말썽부릴지 모르는 이주노동자’ 아니면 ‘돈에 눈이 멀어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 처녀’같이 어두운 이미지부터 떠올려요.




이주외국인들은 ‘도움이 필요한 약자’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주외국인들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요. 받는 것에만 너무 익숙해지죠. 게다가 한국인들은 이주외국인을 도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이주외국인들을 처음부터 부담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다문화’가 한국사회가 떠안고 가야 할 하나의 짐처럼 보이기도 하죠.

다문화가 뿌리를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다문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을 우선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인 거죠.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다문화를 배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오히려 다문화 과정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다문화를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다문화’란 말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우리 가족이 ‘다문화 행사’에 참가했어요. 다문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국인 가정과 다문화 가정이 함께하는 캠프라고 했죠. 그런데 처음에 버스를 탈 때부터 스태프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일반 가정은 이쪽에 타고, 다문화 가정은 저쪽 버스에 타세요!”

한국인들은 나누고 구분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요. 다문화 사회는 차별 없이 다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한국은 다문화의 개념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 배우죠.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필리핀과 한국의 가장 큰 문화적 차이는 뭔가요?
당연히 ‘빨리빨리’죠. 한국 사람들은 추진력이 강하고 근면 성실하죠. 그것이 한국이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 사람들을 스트레스에 빠뜨리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로 위염에 걸린 사람들이 제 주위에도 많더라고요. 반면 필리핀 사람들은 날씨 때문인지 굉장히 낙천적이고 여유로워요. 아마 한국 사람들처럼 ‘빨리빨리’ 했으면 너무 더워서 탈진으로 세상을 떠났을 거예요.(웃음) 한국에서는 여유 부리는 것이 부정적인 느낌이지만 필리핀 사람들에겐 일상이에요. 필리핀 사람들은 삶 자체를 즐겨요. 굉장히 낭만적이죠. 그러다 보니 긍정적이라 쉽게 좌절하거나 지치지 않아요. 한국보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더 많을지도 몰라요.

문화 차이 때문인지 다문화 가정의 이혼율이 일반 가정보다 높습니다.
문화 차이 때문에 처음에 부부 갈등을 겪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살아온 방식이 워낙 달라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필리핀 여성들은 한국에 결혼이주를 오기 전에 하루에 여덟 시간씩 이틀 동안 한국 문화에 대해서 배웁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외국인 아내를 맞는 남편을 위한 문화교육이 단 네 시간뿐이더라고요. 그마저도 내실이 부족해요. 제가 통역을 위해서 교육장에 한번 가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거의 주무시더라고요. 서로의 문화에 대해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내용도 좀 더 현실적이고 재미있어야 할 것 같아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그지만 한국에서 16년이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지난해엔 큰 슬픔이 있었다. 남편을 잃은 것이다. 물에 빠진 딸 아이를 구하다 숨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 더욱 깊게 뿌리내리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최근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고통스러울 만도 한데 한국에 계속 남기로 결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결혼한 지 16년 됐어요. 인생의 반을 한국에서 보냈죠. 남편과 저는 줄곧 한국에서 함께 꿈을 꿔왔어요. 남편이 떠나면서 한국에 온 이유가 사라졌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한국에 남을 이유가 됐어요. 남편의 빈소에 정말 많은 분께서 오셨더군요.

사회 각계각층에서 관심을 가져주는 걸 보고 우리 가족이 한국사회에서 조금은 다른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남편은 그동안 저의 다문화 활동을 항상 뒤에서 도와줬어요. 저와 제 가족이 다문화 가정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파도 견뎌내고 있습니다.

슬럼프는 어떻게 이겨내세요?
남편이 항상 그랬어요. ‘당신이 못하면 아무도 못해’라고요. 발인하는 날 열다섯 살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오늘까지만 울자.’ 힘들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려요. 그리고 많은 분이 우리를 위로해 주고 있어서 힘들어도 힘들지 않아요. 게다가 저는 낙천적인 필리핀 사람이잖아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제게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다른 이주여성들에게 한마디 해주시겠어요?
천 마디 말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저 자체가 희망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했으니까 다른 분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올해 계획이 궁금합니다.
사실은 특별한 계획은 세우지 못했어요. 원래는 남편과 함께 세운 계획이 있었는데 우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기로 했죠.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이 계획은 일단 미루고 지금 제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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